19 영농일지(18) 태풍 피해
2019년 9월 23일(월) 태풍 타파가 쓰러뜨려 놓고 간 벼를 묶어 세웠다.                                                                                                                                                                                                                   <가로 사진은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태풍 ‘타파’가 다가오는 어제 내내 마음 졸이며 논의 벼에 피해 적게 해달라고 빌었다.
'방향은 우틀, 바람은 약하게...'

'타파'가 지나간 오늘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시각에 부리나케 논으로 달려갔다.
본포다리 못 미처 공터에 주차하고 다리에서 우리 논을 내려다보니 앞쪽 벼가 쓰러졌다.
어제 저녁 내내 걱정한 만큼은 아니라서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쓰러진 벼를 바라보니 갑갑한 마음을 내 칠 수가 없다.

옆 논은 반만이나 쓰러져 초토화가 되다시피 하다.
비록 남의 논이라지만 주인의 심정을 잘 헤아릴 수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저렇게 많이 쓰러진 벼를 어찌 세우나?’

잔뜩 찌푸려 있던 하늘에 일출 기운이 있어 일출경 촬영하고 논으로 갔다.
논 둘러보며 벼가 쓰러진 상태를 점검했다.
다리 위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물꼬를 더 깊이 파서 물이 잘 빠지도록 해두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벼 상태 알려주고 점심 먹고 벼 묶으러 가기로 한다.

<우리 논의 일출경>
<벼가 쓰러진 곳>
<쓰러진 곳 자세히 보기>
<오른편의 옆논은 초토화가 되다시피 많이 쓰러졌다>
<일출 파노라마1> 클릭!
이른 점심 먹고 아내와 논으로 갔다.
나는 벼 묶을 노끈을 규격에 맞게 자르고 아내는 묶기 시작했다.
노끈이 모자랄 것 같아 봉강농협에 가서 노끈 1롤을 사왔다.

노끈을 길이 맞춰 잘라 넉넉하게 준비해놓고 나도 벼를 묶기 시작했다.
자농 6년 만에 처음 해보는 일이다.
TV에서 군인들이 쓰러진 벼 묶어세우는 대민 봉사작업 하는 것만 보다 내가 직접 해보게 될 줄이야.

아내는 능숙하게 잘하는데 나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많이 서툴러 버벅거렸다.
쓰러진 벼 4포기에서 6포기 정도를 한 번에 묶는데 볏단을 감싸 안은 다음 줄로 묶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아니면 언제 볏단을 안아 보겠나.

그리 힘든 일은 아니지만 허리가 조금 뻐근하다.
하다 보니 손에도 익어 훨씬 편하게 잘할 수 있게 되었다.
손바람이 날 정도가 되니 쓰러진 벼들을 거의 다 묶어세우게 되었다.
아내는 쫑긋쫑긋 올라온 ‘피’가 보기 싫었던지 피사리를 시작한다.
다음에 하자고 말려도 들은 척도 안한다.

나도 그냥 있기가 머쓱해 반쯤 쓰러진 벼까지 묶었다.
피사리는 따로 날을 잡아 해야 할 만큼 많아 오늘 다 할 수가 없다.
내가 그만하라고 강하게 윽박지르니 마지못해 피사리를 멈추고 나온다.

3시간 30분이나 일했다.
힘들었지만 쓰러진 벼를 오늘 다 일으켜 세워놓으니 마음은 푸근하다.

며칠 내로 피사리도 한 번 더 해야 한다.
그냥 두면 ‘피’ 씨가 논에 떨어져 내년에 피밭이 될 거다.
<우리 논 일출경 파노라마2> 클릭!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19/09/23 19:23 | 여행과 삶 | 트랙백 | 덧글(1)
19 영농일지(17) 농사 단상
농사 단상 / 추수를 앞두고                                                                                                                                                                                                                                                          <가로 사진은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마지막 논두렁 풀베기 한 지 1주일이 지나 벼 상태가 궁금하여 논 둘러보러 갔다.
손바닥만큼 쓰러져있던 벼는 얼마나 더 쓰러졌는지, 간혹 보이던 거뭇거뭇한 낱알은 병이 아닌지도 자못 걱정되었다.

그리고 지난 번 풀베기할 때 눈여겨 본 논두렁 옆 작은 물길에 활짝 피어 고운 자태 뽐내고 있던 ‘사마귀풀’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덤으로 ‘고마리’와 ‘며느리배꼽’도 담을 수 있으리라.

논으로 가는 길에 논이 내려다보이는 본포다리 부근에 차를 세우고 다리 위에 섰다.
한 눈에 봐도 벼가 조금 더 누렇게 익은 것 외는 크게 달라진 없는 것 같아 안심한다.
다리에서 내려다보이는 우리 논 전경을 담는다.
다시 차를 몰고 논을 지나 본포다리 밑 그늘에 주차한다.
챙이 큰 작업모자 쓰고 신발은 장화로 갈아 신고 카메라 들고 논두렁으로 다가갔다.

벼메뚜기들이 화들짝 놀라 이리 저리 어지러이 튀어 오르거나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등 난리법석이다.
논두렁을 다녀보니 벼메뚜기들이 엄청 많다.
논두렁에서 한 두 걸음 옮길 때마다 서너 마리가 튀어 올라 황급히 도망갈 정도다.

저 녀석들 손으로 잡아 빈 병에 넣거나 강아지풀에 아가미 끼워 엮던 까마득한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집에 가져가면 어머니께서 볶아주셔서 맛있게 먹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그런데 지금 메뚜기들 튀는 걸 보니 도저히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작은 움직임에도 엄청 예민하게 반응하며 재빠르게 도망간다.
사진 한 컷 찍기도 쉽지 않다.
논두렁 옆 물길에 여전히 곱게 피어있는 ‘사마귀풀’을 매크로렌즈 끼워 여러 컷 담는다.
주변의 아직 덜 핀 ‘고마리’도 담았는데 ‘며느리배꼽’은 좀 더 있어야 볼 만하겠다.

비록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아 눈길 주는 이가 없는 들꽃이지만 볼수록 예쁜 아이들이다.
논두렁을 지나가며 벼 상태를 살펴보니 낱알이 하얗게 마른 벼들이 많다.
그리고 논바닥에 떨어진 벼 껍질도 적지 않다.

보나마나 ‘참새’들과 ‘닷쥐’들의 소행이다.
‘더런 넘들...’
또 모르지, 내가 보지 못한 다른 녀석들도 알찬 먹이를 보고 달려들었는지.

때마침 나 보란 듯 20~30여 마리의 참새 떼들이 우리 논과 이웃 논을 들락거리는 게 보인다.
“야 이 숭악한 넘들아, 마이 무따 아이가, 이제 고만 무라!”

참~내, 저 넘들 잡으려고 참새그물 놓을 수도 엄꼬.
내가 논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깡통 두드리며 쫓을 수도 엄꼬.
우짜면 좋노.

“그래, 좋다. 마이 무라!”
“너거가 묵으면 얼매나 묵것노. 갈라 묵지 뭐.”

그래도 우리 논의 나락만 까먹지 말고 이우지 논에도 한 번씩 댕겨오거라이~.

<참새떼가 훑어 먹어 하얗게 마른 벼 낱알들> 인적이 드문 과수원쪽과 배수로쪽 논두렁 벼들이 참새와 닷쥐의 피해 흔적이 많다
지금은 논이 마른 상태라 고라니 녀석들도 논으로 들어가 숨어 지낸다.
고라니가 벼 낱알을 훑어 먹는지는 모르겠다.
지난해 추수할 때 콤바인이 지나가며 숨어있던 고라니 놈 몸통 해체작업할 뻔 했다.

오늘도 사진 찍다보니 이웃 논에 머리통만 내밀고 주위를 살피다 나와 눈이 마주치니 훌쩍훌쩍 뛰어 도망가다 몸을 숨긴다.
우리 논이면 돌팔매질이라도 해서 쫓았을 거다.

<지난 해 추수할 때 논 가운데 숨어있다가 콤바인을 피해 도망가는 고라니>
벼 사이로 삐죽삐죽 '피'가 보인다.
여기저기 적지 않다.

지난 한여름 무더운 날 팥죽땀 흘리며 피사리 엄청 열심히 했는데도 저렇게나 많이 올라왔단 말인가!
아마 피사리 하고 난 뒤에 새로 올라온 ‘피’가 많았던 모양이다.

옆 논에도 예년에 비해 ‘피’가 많아 보인다.
이러다 '피'풍년 들겠네.
수확에 별 지장은 없겠지만 꼴 보기 싫어 논으로 들어가 머(리)끄댕이 뜯듯이 쥐어뜯고 싶다.
오늘따라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뭉실뭉실 떠 있는 화창한 날씨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와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잘 어우러진 그림 같은 가을 들녘 풍경을 담고 또 담는다.
<연근 수확하고 난 뒤의 이웃 논 풍경> 
먼 바다에서 태풍 ‘타파’가 올라온다는 뉴스가 떴다.
비를 많이 싣고 오는 태풍인데 모레 밤중에 대한해협을 지나갈 모양이다.
“이보시게, 타파! 조금 더 ‘우틀’하여 일본 쪽으로 가시면 안 되겠는가?”

추수를 한 달 앞둔 시점이다.
제발 아무 탈 없이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길 천지신명에 빌고 또 빈다.  (끝)
<우리 논 파노라마> 클릭!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19/09/22 09:40 | 여행과 삶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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