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이야기
나는 지난 6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가?

무엇을 쫓으며 살았는가?
잘 살았는가, 헛 살았는가?

요즘 들어 부쩍 나의 지난 삶을 돌이켜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특히 잠자리에 눕거나 새벽에 일어나면 뜬금없이 지난 날들이 자꾸 떠 오른다.
어린시절부터 청장년 시절 그리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내 삶을 회상해보니
후회하는 일도 많고 아쉬운 기억도 많으며 건강을 잃고 힘든 날들도 많았다.
하지만 누구의 삶인들 그 정도 번민과 회한, 고통이 없었겠는가.

내 비록 화려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앨범을 뒤적인다.
내 삶이 오롯이 담겨있다.

빛바랜 사진들을 보니 그 사진 속에 스며 있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이어진다.
사진 들여다보다 오늘까지의 내 삶을 정리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그래, 천간(天干) 지지(地支) 조합하여 육십갑자 한 바퀴 돌아온 회갑이 지났으니 한번쯤 내 삶을 정리해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자서전을 쓸 마음은 아직은 없다.
그냥 편하게 사진 위주로 내 삶의 흔적을 약력으로 남긴다. 
지난 사진들을 막상 고르려고 자세히 살피니 빛이 많이 바랬고 옛 스냅사진들이 대체로 인물의 초점이 맞지 않았다.
또 괜찮은 사진은 단체사진이 많아 뜻밖에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가능한 혼자 찍은 사진을 고르려고 했으나 부득불 단체사진, 일부를 잘라낸 사진이 있다. 

<1955. 7월 /출생 후 28개월 즈음> 제일 소중한 사진
이 사진 보면 손자 지한이의 모습이 보인다.

<1966년 10월 / (진해덕산)국민학교 6학년 시절> 앞줄 가운데 아이 / 어린시절 사진은 오직 이 한장 뿐이다
국민학교 시절의 기억은 동무들과 열심히 뛰어 논 기억이 제일 뚜렷하게 남았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잘한 편이었다.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진해중학교에 합격했다.

우리 집은 모교인 진해덕산국민학교 담장 너머 길 건너에 있었다.(학교정문과 멀어 놀러 학교에 갈 때면 주로 담치기를 했다.)  

봄이면
시루봉 아래 산자락에서 전쟁놀이하며 피비(삘기) 빼 먹고 송구(소나무 어린 가지) 벗겨 먹던 추억.
여름이면
모교 담을 넘어 버즘나무에 본부 지어놓고 놀기. 
지금은 사라진 작은대섬(소죽도)이 마주보이는 바닷가에서 물놀이 하고 배고프면 굴 까먹고 몰(해조류인 마름) 뜯어 먹거나 해삼 잡아 먹던 추억.
가을이면
들로 뛰어다니며 벼메뚜기 잡던 추억(집에 가져오면 어머니께서 튀겨 주면 맛있게 먹었다)
겨울이면
날마다 이른 아침 꽁꽁 언 동네 옆 개울에서 썰매 타기. 한 낮에는 모교 운동장에서 자치기, 연날리기 하던 추억.

날마다 동무들과 신나게 놀던 기억이 제일 많고 크다.
우리는 그렇게 놀며 컸다.

참, 6학년 때는 모교 축구대표선수였다.(모교는 축구명문교로 지금도 축구부가 있다) 
경남 무슨 연합체육대회로 기억되는데 진해시 국민학교 축구 대표로 충무시까지 군함타고 시합하러 간 기억이 뚜렷하다.

<1972년 /고등학교 3학년>
중학교 시절에는 위로 형님, 누님들이 다 출가하거나 타지에 살았기에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
부모님께서 밥을 해두고 일찍 일터로 가시면 내가 동생들 밥 챙겨먹이고 설겆이 한 뒤 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엔 축구에 미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고3  때 입시를 앞 둔 10월 초까지 정규수업 마치고 나면 보충수업 빼먹고 축구하러 갔다.

<1972년 5월/ 고등학교 3학년 축구부원들과 > 뒷줄 오른쪽에서 3번째 선수
<1974년 10월 진주교육대학시절>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지도교수님 옆 학생(흰바지)
고등학교 3학년때 축구부 활동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했다.
하지만 누구나 다하는 11월 대입예비고사에 응시했는데 운좋게 합격하였다.
(당시는 대입예비고사에 합격해야 대학 입학자격이 주어졌다)

어느 대학갈까 고심하다 국민학교 교사였던 뒷집 형님에게 자문을 구해 진주교육대학에 응시하였다.

교육대학은 사립대학에 비해 학비가 많이 싸며 따로 군입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현혹되었다.
(당시 교육대학은 2년제 초급대학이었고 RNTC제도가 있어 재학 중 교련과목을 이수하고 4주 군부대 입소훈련을 마치고 교사발령 후 5년간 의무복무를 하면 군면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2년 과정의 초급대학이라 빨리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끌렸다.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또 아버님께서 큰 병으로 투병 중이라 내가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못해 더 그랬다.
(아버님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보낸 편지도 읽지 못하고 입학 오리엔테이션 기간 중에 돌아가셨다)

대학시절 자취하며 배 골아가며 학교 다녔고 큰형님의 학비 지원으로 근근이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 2학년 때 라면만 먹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은 축구부 지도교수님께서 시합을 앞두고 사 주신 소고기 로스구이.
난생 처음 먹어 본 로스구이 그 맛과 교수님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못한다.

<1974년 진주교육대학 축구선수 시절>
<1974년 4월 / 교육대학 시절 지리산 첫 산행> 왼쪽 바위를 보면 법계사로 보인다.
<1977년 청년시절>
교육대학을 졸업하고도 교사 적체로 발령을 받지 못했다.
졸업하고 두 달 놀고 나니 어머니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기 괴로워 잡일을 하러 다녔다.
이름하여 '노가다 대모도'. 막노동판 보조, 잔심부름꾼 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1975년 겨울에는 진해 웅산 아래 (지금은 울창한) 편백나무숲 처음 조성할 때 내가 일당 700원 받고 편백나무 묘목 심으러 다녔다
그러다 1976년 4월 1일자로 거제 신호국민학교 초임발령을 받아 교사가 되었다. 23세 때다.

<1978년 추석 다음날 가을운동회> 6학년 단체경기 "갑순이 시집가는 날"
총각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불효를 많이 했다.
섬 학교에서 한 달에 한 두 번 집에 오면 혼자 계신 어머님은 안중에도 없고 밤새도록 친구들과 어울려 술 퍼마시며 지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님께 참 못난 짓을 많이 했다는 생각에 부끄럽고 잘해 드리지 못한 게 한이 된다.
선생이 된 자랑스럽고 잘난 아들래미 오랜만에 따뜻한 밥 한끼 먹이며 정담 나누고 싶었을텐데...

어찌 그리 철이 없었을꼬.
어머님이 얼마나 서운했을까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지금도 살 떨린다.

<20대 초반 / 풋풋한 젊은 시절>
<1979년 11월 결혼> 26세,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하였다.
나의 결혼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를 찍어야 한다.
섬 학교 총각선생님과 섬마을 처녀의 운명적 만남과 러브 스토리.

<1984년 30세> 아들과 함께 한산도 가는 배에서
결혼 1년 뒤에 학교를 창원시로 옮겼다.

고향인 진해시로 가려고 했으나 인사부정의 희생자가 되어 창원시로 발령이 났다.
인사담당 장학사가 특정인을 진해시로 보내기 위해 점수가 제일 높은 나의 동의도 없이 근무희망지를 창원시로 바꾸었다.
초임교사라고 만만하게 보고 희생양으로 삼은 그 장학사를 죽일려고 하다가 여차한 사정으로 참았다.

80년대 초 당시는 창원시가  조성될 무렵이라 허허벌판이었고 학교근무상황도 열악하여 지원하는 교사가 아주 적었다.
(오기로 1 년뒤 다시 내신을 내어 진해시 모교로 옮겼다.)

창원에 근무하면서 내 몸에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20대 후반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며 살이 빠지고 심한 갈증에 물을 달고 다녀야 했다.
심장이 터질듯이 뛰고 눈이 돌출하며 손발이 떨려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심하면 사지 근무력증이 나타나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다.
보통 저녁에 발병하면 새벽이 되어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전형적인 갑상선기능항진증세다.

그러나 당시에는 몰랐다. 제일 큰 마산고려병원(삼성병원)에서도 바른 진단을 하지 못했다.
원인도 모른 채 1년을 고생하다가 부산동아대학병원 갑상선 전문의 김동수 박사에게 갑상선기능항진증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증세가 나아지자 내 마음대로 투약을 중단하여 재발하였다.
뒤에 호전과 재발을 반복하다 정신을 차려 처방대로 꾸준히 약을 복용하여 건강을 유지하게 되었다.

지금도 하루 1알 약 처방을 받고 복용하여 아무 이상 증세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1984년 여름> 모교 축구부 감독교사 시절 / 멀리 뒤편 맨 오른쪽 봉우리가 천자봉이다. 시루봉은 사진 맨 왼쪽 끝부분
1982년부터 1986년까지 모교 진해덕산국민학교에 재직하며 4년동안 축구부 감독을 맡았다.

내가 축구선수를 했고 모교였기에 당시 월급의 30~40%를 축구부 활동에 쏟아부으며 열성적으로 감독직을 수행했다.
훈련 마치고 코치들과 밥먹고 헤어지는 시간이 퇴근시간 이었다.
방학 때는 합숙훈련을 10일 정도 하는데 선수들과 함께 교실합숙소에서 지냈다.
집에는 옷 갈아입을 때만 갔다. 
어린 아들 딸과 놀아주기는 커녕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나 때문에 아내가 경제적으로 엄청 곤란을 겪어야 했단다.
아들녀석이 과자 사달라며 가게로 끄는 손목을 냉정하게 뿌리쳐야 할만큼...ㅠㅠ
바보같이 당시 나는 그리 심각한 줄 몰랐다. 참 못난 남편이요 아버지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회성적이 썩 좋지 않았다.
한전유소년 축구단에 2회연속 뽑혀 4년동안 지원을 받았고 유소년 축구 전국대회 4강에 든 게 가장 큰 성과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감독직을 수행했음에도 나에게 돌아온 대가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땐 많이 서운했다.

<1995년 2월> 40대 초반 / 창원 용지초등학교 6학년 담임 때 졸업식날
30대 중반, 나의 교사생활과 인생에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전두환 독재정권기 말 1986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교직사회의 민주화 움직임부터 시작된다.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1989년 전국교직직원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과정에서 나도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정치, 경제적인 사회의 모든 문제를 똑바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겨레 신문과 월간 '말'지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인문사회 관련 도서들을 열독하기 시작했다.
(1994년 창간한 주간지 '한겨레21'은 창간부터 지금까지 정기구독자다)
그리고 교사협의회와 전교조 결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고 듣고 참여하면서 얻은 여러 정보들은 나의 정치적 신념을 바르게 이끌어 주었다.

나아가 확고한 소신을 갖고 살게 되었고 교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1996년 11월> 40대 초반 / 휴일날 반 아이들 데리고 비음산 등산하고
나는 근본이 비리나 부당행위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20대부터 교장, 교감에게 무조건 복종하지 않았고 심하면 대들기도 했다.
(모교에 근무할 때 군출신으로 특채되어 전횡을 일삼던 악명 높은 교장과 혈투를 벌일 뻔한 적도 있다.)

전교조 비합법 시절에는 간부들의 권유로 후원 교사로 남았고 합법화 이후에는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당당하게 활동했으며 열심히 참여했다.
전교조 주최 전국교사대회도 여러 번 참석했고 전교조 창원초등지회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타고난 성향이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해 간부직은 스스로 나서지도 않았고 권유해도 사양했다.

내 또래 전교조 조합원 극소수다. 특히 초등교사는 더 그렇다.
(참고로 교대 동기 중 조합원은 3명 뿐이었다. 한 명은 내가 권유해 가입했다) 

교사로서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부끄럽지 않으려고 애썼다.
교감, 교장, 교육청의 비교육적이거나 부당한 지시는 분명하게 거절했고 또 항의했다.
나의 입신양명을 위해 타협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았다.
오직 참교육을 위해 위해 바른 길로 갔다.

37년 평교사로서 아이들을 위해 참다운 교사가 되려고 많이 애쓴 점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뿌듯하다.
     
<2010년 5월 56세 늙은 조합원/ 전국교사대회> 서울 여의도 공원- 행사 시작 전이라 썰렁하다
40대 들어 교직생활하며 틈틈이 수채화 공부를 하다 1999년도부터 서양화가 공타 선생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그림공부를 하였다.
1999년 같은 문하생들이 '예감회'를 결성하여 매년 가을에 전시회를 열었다.

2006년도 전시회를 끝으로 예감회가 해체되고 2010년 8월부터수채화 대신 한자서예 공부를 시작하여 오늘까지 정진 중이다.

<2000년대 초반 / 예감 수채화전시회 오픈식 인사>
40대 중반에 다시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왔다.
갑상선 기능항진증의 가장 큰 증세가 심장이 나빠지는 건데 다른 증세는 나아져도 심장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긴장하면 말을 못할 정도로 심박수가 빨라지고 숨이 가빴다.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건강을 위해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산행을 시작할 무렵이 여름방학 때라 거의 날마다 산에 갔다.
1년 만에 창원의 산길을 접수하고 창원 외 근교산으로 진출했다.
2년만에 지리산행에 도전했다.
내 나이 50세 되던 해였다. 

더불어 저녁 식사를 생식으로 대신 했다.
건강이 급속하게 회복되었다. 젊은 시절보다 더 건강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별다른 이상없이 건강하게 농사 짓고 산행을 하고 출사를 다닌다. 

<2008년 2월 / 아들 결혼식 날>
<2010년 8월> 아내와 지리산 천왕봉에서
교직 37년 째, 2012년 담임을 끝으로 명예퇴직을 하였다.
정년 3년 6개월을 남겨 놓은 시점이다.

나머지 3년 6개월을 시 외 지역으로 옮겨 근무해야 하는 문제와 교사로서의 열정이 식어 퇴직을 결심하였다.
아이들에세 최선을 다하지 못할 교사생활은 나의 자존심으로는 더 할 수가 없었다.

적더라도 박수 칠 때 물러나고 싶었다.
많이 아쉬웠지만 후회는 없다.

퇴직기념으로 교직생활 중 틈틈이 공부한 수채화와 한자서예, 사진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그동안 고마운 분들께 그렇게라도 감사의 인사드리고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었다.

<20013년 2월 / 퇴직기념 개인전 팜플렛> 
<전시작품> 수채화, 서예, 사진 작품
<퇴임식 가족과 함께>
퇴직 후에는 독서하기, 논 1,200평 벼농사 짓기, 산행하기, 한자서예 공부하기, 풍경과 야생화 사진촬영 하기 등 나름 바쁘게 살고 있다.
산행, 출사 등 바깥 나들이는 붐비지 않는 평일 좋은 날 골라 나갈 수 있어 아주 마음에 든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가까이 살고 있어 언제든지 볼 수 있고 나들이도 함께 갈 수 있어 더 행복하다.

<2015년 3월 / 내 생일날 손자, 손녀들과 함께>
<서예공부 중>
지금까지 내 삶 60년을 약력으로 되돌아 보았다.
잘났던 못났던 내 의지로 소신껏 걸어온 삶의 흔적이다.

잘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나는 지난 삶의 흔적들을 모두 존중하고 사랑한다.

앞으로의 삶도 진실하고 소박하지만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15/08/25 19:27 | 여행과 삶 | 트랙백 | 덧글(18)
트랙백 주소 : http://baeksan.egloos.com/tb/315451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백송종 at 2015/08/25 21:08
계속편으로자꾸하세요-정말좋은교본이-나도이렇게정리한번해볼까햇는데-추억으로정리한번해볼까햇는데-쉽지않아서-가슴뭉껄한걸-손주들에게좋은교본으로-나도이번에지금까지앨범을정리하여-추억사진을골라아커릴각구에넣어-나의방에20개정도넣어놓고보니-매일보아도기분이좋아-계속만들어옛날을보고싶다-강선생처럼잘정리해서-내손주에게보여주고싶다-누구라도어릴때사진구해서라도이런편집되면얼마나좋을까
Commented by 백산 at 2015/08/26 08:58
어제 하루종일 앨범 뒤져 사진 고르고 편집하고 글 쓴다고 쌔가 빠졌네.
그래도 지나 온 내 삶을 회상해 보고 약력으로나마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가치로운 일이라 여겨 기뻤네.

한번 해보시게.
간단치 않지만 즐거운 시간이 될거라 생각하네.
Commented by binjaree at 2015/08/25 22:24
한 분의 생을 제가 감히 들여다 봐도 되는건가 싶지만 공개하신거니 찬찬히 읽습니다
턱받이를 한 귀여운 아기의 머리칼에 서리가 내려앉을 만큼의 긴 시간동안 구비구비 사연도 많으셨겠지만 이렇게 담담히 돌아보심은 그 시간동안 최선을 다 하셨던 삶이니 가능하리라 여겨지고요
전 돌아보면 늘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그때 더 참았더라면, 더 용기를 냈었더라면, 좀 더 최선을 다하였더라면...이런 후회들이 들곤 해서 돌아봄이 아릿하곤 했었어요
이제 그 후회조차 쓸모없는 일이라 그저 주어진 삶 물 흐르듯 그렇게 가보자 하고있지요^^*
저 심각한 표정의 귀여운 아기와 빛나던 청년 시절 그리고 이제 중후한 중년 모습 이렇게 뵈올수 있어 좀 더 가까운 마음입니다^^* 백산님께 멀리서 마음깊이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
Commented by 백산 at 2016/07/02 20:12
남에게 보이기 위한 포스팅은 아니지만 남의 삶을 엿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여 공개했습니다.

후회없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살아가며 후회하고 반성하여 조금 더 나은 삶을 사는 게 인생사 아니겠습니까?

누구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binjaree님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 지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명품추리닝 at 2015/08/26 00:26
와... 정말 멋져요. 몇몇 글들만 읽고는 얌전한 문학소년의 이미지를 혼자 그리고 있었는데, 만능 스포츠맨이셨네요.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격'이란 어느 교육과정 문구가 떠오르는 포스팅입니다.
인생의 여러 가지 고비를 정직하게 넘기신 듯한 풍모가 많이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당장 자서전은 안 쓰시더라도, 아내분과의 러브스토리는 꼭 포스팅해주시길 부탁드려요~><
Commented by 백산 at 2015/08/26 09:19
학창시절엔 얌전한 아이였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반전의 면모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만 근본 성향이 조용한 편이라 혼자라도 잘 지냅니다.

만능은 아니지만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예체능에 소질이 있었고 좋아했습니다.
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림도 그냥 잘 그리는 편이었습니다.
서예도 잘 썼는지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방과후 지도하기 위해 남으라고 했는데 친구들과 놀기 위해 도망쳤죠.

지금도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사진 찍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러브스토리 공개는 아내의 동의 없이는 어렵습니다. -_-:;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풀잎아 at 2015/08/26 07:00
백산님의 생애사...
한 편의 시나리오를 읽은 듯 합니다.

멋진 인생을 살아오심을 축하드립니다.
詩, 書, 畵를 묶으시는 藝人의 모습이십니다.
더욱 건강하십시요.
Commented by 백산 at 2015/08/26 09:26
약력이라고 해놓고 쓰다보니 자꾸 늘어나더군요.
끝도 없겠다 싶어 과감하게 줄였습니다.

힘들어도 그렇게 자꾸 쓰다보면 자서전이 되겠다 싶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훗날 자서전을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藝人이라 불러주시니 고맙기도 하고 황망하기도 합니다.
詩, 書, 畵 모두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고 흉내만 내는 정도라.... ^____^**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조재황 at 2015/08/26 15:07
흔히 말하는 베이비 붐 세대에 태어나 인생 전반전을 멋지게 사셨네요.
그리고 지금은 여유롭고 풍족한 인생 후반전을 보내고 계시고...

저도 이제 퇴직 10여년 남았는데 과연 이런 멋진 후반전을 보낼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인생의 선배로서 살아가시는 족적을 남겨 주시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건강하십시요...
Commented by 백산 at 2015/08/26 21:26
인생 후반 멋지게 보내는지 어떤지 저도 실감하지 못합니다.
다만 나날이 즐겁습니다.

조재황님, 퇴직 후 설계를 지금부터 하십시오.
생각보다 절실한 문제입니다.
특히 연금문제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최대한 납입하세요. 100세 인생의 생명줄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물매화 at 2015/08/27 20:40
백산님의 일대기
갓난아이부터 유소년,청년,중장년까지
그렇게 열심히 살았고 후회없는 삶을 살았기에
큰박수보냅니다
소신이 가장 중요하겠죠??
열심히 산 이유로 지금은 여유로운? 내가하고싶은일 하시면서 사시는거 같아요

갑상선 기능항진 약 잘 드시고 항상 건강하면서
이렇게 좋은 글 오래도록 보기를 기원합니다
Commented by 백산 at 2015/08/29 07:18
비록 잘날 것 없는 범부의 삶이지만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소신껏 당당하게 살아왔다는 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걱정해 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at 2015/08/28 17:53
전교조 가입해서 활동한 것은 잘못된것임. 반성을 해야 하는데? .....다른 생활이나 가족관계는 존경하고 요!
Commented by 백산 at 2015/08/29 07:18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미소1004 at 2016/03/26 06:19
한 사람의 인생을 한 편의 글로 알고 이해를 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가슴 뭉클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진주에서 초등교사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열정을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백산 at 2016/03/26 22:22
미소1004님, 반갑습니다.

사진에 덧붙인 짧은 글이지만
지난 삶을 돌이켜보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권의 시녀가 되어버린 교육부에 행태에 분노하면서
미소1004님은 교육의 중심에 아이들을 놓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너님 at 2017/08/30 22:41
모교인 용지초등학교 시절이 문득 그리워 찾아보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또한 선배님의 길을 가고있는 진주교대 33회 ~ 현재는 대구에 재직중인 후배입니다~ 제자들과 서 계시던 용지초등학교 교정에서 졸업하던날이 바로 어제처럼 느껴집니다~ 인생의 선배이자 교직의 선배이시기도 한 선생님의 포스팅을 감히 황송히 보았고 큰 여운 담아갑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Commented by 백산 at 2017/08/31 09:24
제가 5년이나 근무한 용지초 출신에 진주교대 후배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___^**

이젠 학교에서 교직수행 면이나 업무 면에서 중심에 선 중견교사가 되시겠네요.
'너님, 먼 훗날 교단을 떠나게 될 때 후회하지 않는 교직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