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단상
사흘 전에 이사했다.
큰 폭으로 오른 전세가 때문에 도심에서 외곽으로 밀려나야 했다.

팔용동과 고개 하나 넘은 북면 감계지구의 전세가는 1억 가까이 차이가 난다. 
부담스런 비싼 돈 깔고 누울 생각이 없어 이사를 결심했다.

감계지구는 34평과 24평의 전세가가 같았지만 부부 둘이 사는데 굳이 큰 평수가 필요 없어 24평을 선택했다.
작은 평수로 가야하기에 짐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며칠 전부터 아내와 짐정리를 했다.
낡은 물품은 물론 최근 1~2년 이상 사용치 않은 물건과 입지 않았던 옷가지 등 버릴 것들을 골라 정리해 두었다.

이사하는 날, 이른 시간에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도착했다.
그분들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5명이 한 팀이 되어 분업과 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역시 전문가들답게 일을 차지게 한다.

포장이사라 주인은 딱히 할 일이 없다.
지켜보다 간간이 직원들이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된다.
시간이 많이 걸려 좀 지루하기도 하고 거실에 있으면 거치적거릴 것 같아 베란다 창가에 서서 바깥 풍경을 본다.

맨 꼭대기 층에 전망이 확 트인 집.
정면의 창원대로 건너편으로 팔용산이, 비껴 오른편 멀리 마산 무학산이 보이며 가끔 멋진 해넘이도 덤으로 감상할 수 있는 전망 좋은 집이다.
4년을 살아 정도 들고 이 멋진 전망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조금 아쉽다.
그렇게 한참을 맥 놓고 바라보다 이사 생각에 잠긴다.
시간을 한참이나 거꾸로 돌려 자취하던 대학시절 이사를 떠올린다.
이불 보따리와 몇 가지 살림도구 리어카에 싣고 가던 이사 풍경은 지금 생각해도 정겹다.
첫 근무지 섬 학교 총각선생 시절에 학교 사택이 부족해 바닷가 마을 단칸방에서 지냈다.
6개월 뒤 새 사택이 완공되어 이사를 했는데 학교 전달부 아저씨와 고학년 아이들의 손을 빌려 하던 보부상 행렬 같던 이사 풍경도 눈에 선하다.

요즘에야 이사해도 주인은 꼼꼼하게 짐을 쌀 필요가 없다.
이삿짐 옮기고 실을 때도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당시 이사할 때면 주인이 직접 짐을 싸고 형제자매, 친지, 친구, 이웃들 힘을 빌려 이사를 해야 했다.

결혼 후 처음 이사할 때 도우미로 친구 몇 명을 불렀다.
소꿉놀이 살림살이라 1톤 트럭이면 너끈했다.
“이런 이사면 하루 열 번도 할 수 있겠다.”는 친구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사를 많이 했음에도 여태껏 내가 주도해서 이삿짐을 싸본 적이 없다.
살림살이에 무관심해 세간도 잘 모르고 야무지지도 못해 짐 꾸리기는 늘 아내의 몫이었고 나는 조금 거들 뿐이었다.

한번은 이사하던 날이 토요일이라 나는 출근하고 이사는 아내가 도맡아했다.
오전 근무 마치고 퇴근하여 이사한 집을 찾아가는데 어딘지 몰라 헤매던 웃픈 기억에 쓴 웃음이 난다.

문득 결혼 후 이사를 얼마나 했는지 궁금해진다.
횟수를 세어 보았다.
세기가 쉽지 않아 손꼽아가며 세어보니 이번이 12번째 이사다.
다른 가정과 비교하면 많은 건 아닐지 몰라도 적은 횟수도 아닐 것 같다.
‘이사하는 횟수만큼 부도 증가한다’는데 재테크엔 무능하고 관심도 없는 나에겐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많은 이사를 다니면서도 모두 집 주인을 잘 만나는 행운이 따랐다.
젊은 시절 셋집을 구할 때 복덕방 통하지 않고 직접 발품을 팔며 집을 구했다.
전봇대나 셋집 대문에 붙은 “셋방 있음(2층 방 2개)” 알림쪽지를 보고 찾아가서 집을 둘러보고 결정했다.

아내가 신발이 닳도록 발품을 팔며 집 구하러 다닌다고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고보니 이사할 때마다 나는 자의반 타의반 수수방관한 꼴이 되었다.
아내에게 많이 미안하다.  

전세계약은 대부분 구두계약을 하고 입주했다.
그래도 아무 탈 없이 이사 다녔다.
당시엔 전세계약에 세입자와 주인 사이에 불문율 같은 믿음이 형성되어 있었던가 보다.
근래에 아파트로 이사 다니면서부터는 부동산을 통해 집을 구하고 계약도 꼼꼼하게 했는데 연장계약은 주인과 직접 서류나 구두로 했다.  

짐을 많이 줄였는데도 짐을 빼고 보니 엄청나다.
‘둘이 사는 짐이 저리도 많을까?’하고 내 스스로가 놀란다.

편리와 물질적 만족을 위해 너무 많이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편함과 물질이 행복의 근본 척도는 아님에도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물질의 유혹은 떨치며 살자.
그리고 작은 불편은 감수하면 될 일이다.

이사 온 집에 짐을 올린다.
작은 평수의 집이지만 입주한 지 3년이 안된 최신 구조라 그런지 쓸모 있게 잘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인 짐조차 욱여넣어야 했다.

이사한 집은 3층이라 낮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여러 동이 가로 막고 있지만 앞쪽에 관리사무소와 놀이터가 있어 공간이 트였다.
그리고 남서쪽 방향으로 자리 잡아 해가 잘 드는 편이다.
무엇보다 팔용동 아파트에 비해 주차공간이 넓어 주차부담이 적어 마음이 푸근하다.
여러모로 마음에 쏙 드는 집이라 우리 부부의 보금자리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사하려니 힘들고 성가신 일이 많다.
이사비와 부대비용 지출도 만만찮아 부담이다.

이번 집에서는 좀 오래 살고 싶다.
그러나 셋집살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문제다.  <끝>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17/02/26 18:10 | 교육단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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