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영농일지(17) 농사 단상
농사 단상 / 추수를 앞두고                                                                                                                                                                                                                                                          <가로 사진은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마지막 논두렁 풀베기 한 지 1주일이 지나 벼 상태가 궁금하여 논 둘러보러 갔다.
손바닥만큼 쓰러져있던 벼는 얼마나 더 쓰러졌는지, 간혹 보이던 거뭇거뭇한 낱알은 병이 아닌지도 자못 걱정되었다.

그리고 지난 번 풀베기할 때 눈여겨 본 논두렁 옆 작은 물길에 활짝 피어 고운 자태 뽐내고 있던 ‘사마귀풀’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덤으로 ‘고마리’와 ‘며느리배꼽’도 담을 수 있으리라.

논으로 가는 길에 논이 내려다보이는 본포다리 부근에 차를 세우고 다리 위에 섰다.
한 눈에 봐도 벼가 조금 더 누렇게 익은 것 외는 크게 달라진 없는 것 같아 안심한다.
다리에서 내려다보이는 우리 논 전경을 담는다.
다시 차를 몰고 논을 지나 본포다리 밑 그늘에 주차한다.
챙이 큰 작업모자 쓰고 신발은 장화로 갈아 신고 카메라 들고 논두렁으로 다가갔다.

벼메뚜기들이 화들짝 놀라 이리 저리 어지러이 튀어 오르거나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등 난리법석이다.
논두렁을 다녀보니 벼메뚜기들이 엄청 많다.
논두렁에서 한 두 걸음 옮길 때마다 서너 마리가 튀어 올라 황급히 도망갈 정도다.

저 녀석들 손으로 잡아 빈 병에 넣거나 강아지풀에 아가미 끼워 엮던 까마득한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집에 가져가면 어머니께서 볶아주셔서 맛있게 먹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그런데 지금 메뚜기들 튀는 걸 보니 도저히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작은 움직임에도 엄청 예민하게 반응하며 재빠르게 도망간다.
사진 한 컷 찍기도 쉽지 않다.
논두렁 옆 물길에 여전히 곱게 피어있는 ‘사마귀풀’을 매크로렌즈 끼워 여러 컷 담는다.
주변의 아직 덜 핀 ‘고마리’도 담았는데 ‘며느리배꼽’은 좀 더 있어야 볼 만하겠다.

비록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아 눈길 주는 이가 없는 들꽃이지만 볼수록 예쁜 아이들이다.
논두렁을 지나가며 벼 상태를 살펴보니 낱알이 하얗게 마른 벼들이 많다.
그리고 논바닥에 떨어진 벼 껍질도 적지 않다.

보나마나 ‘참새’들과 ‘닷쥐’들의 소행이다.
‘더런 넘들...’
또 모르지, 내가 보지 못한 다른 녀석들도 알찬 먹이를 보고 달려들었는지.

때마침 나 보란 듯 20~30여 마리의 참새 떼들이 우리 논과 이웃 논을 들락거리는 게 보인다.
“야 이 숭악한 넘들아, 마이 무따 아이가, 이제 고만 무라!”

참~내, 저 넘들 잡으려고 참새그물 놓을 수도 엄꼬.
내가 논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깡통 두드리며 쫓을 수도 엄꼬.
우짜면 좋노.

“그래, 좋다. 마이 무라!”
“너거가 묵으면 얼매나 묵것노. 갈라 묵지 뭐.”

그래도 우리 논의 나락만 까먹지 말고 이우지 논에도 한 번씩 댕겨오거라이~.

<참새떼가 훑어 먹어 하얗게 마른 벼 낱알들> 인적이 드문 과수원쪽과 배수로쪽 논두렁 벼들이 참새와 닷쥐의 피해 흔적이 많다
지금은 논이 마른 상태라 고라니 녀석들도 논으로 들어가 숨어 지낸다.
고라니가 벼 낱알을 훑어 먹는지는 모르겠다.
지난해 추수할 때 콤바인이 지나가며 숨어있던 고라니 놈 몸통 해체작업할 뻔 했다.

오늘도 사진 찍다보니 이웃 논에 머리통만 내밀고 주위를 살피다 나와 눈이 마주치니 훌쩍훌쩍 뛰어 도망가다 몸을 숨긴다.
우리 논이면 돌팔매질이라도 해서 쫓았을 거다.

<지난 해 추수할 때 논 가운데 숨어있다가 콤바인을 피해 도망가는 고라니>
벼 사이로 삐죽삐죽 '피'가 보인다.
여기저기 적지 않다.

지난 한여름 무더운 날 팥죽땀 흘리며 피사리 엄청 열심히 했는데도 저렇게나 많이 올라왔단 말인가!
아마 피사리 하고 난 뒤에 새로 올라온 ‘피’가 많았던 모양이다.

옆 논에도 예년에 비해 ‘피’가 많아 보인다.
이러다 '피'풍년 들겠네.
수확에 별 지장은 없겠지만 꼴 보기 싫어 논으로 들어가 머(리)끄댕이 뜯듯이 쥐어뜯고 싶다.
오늘따라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뭉실뭉실 떠 있는 화창한 날씨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와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잘 어우러진 그림 같은 가을 들녘 풍경을 담고 또 담는다.
<연근 수확하고 난 뒤의 이웃 논 풍경> 
먼 바다에서 태풍 ‘타파’가 올라온다는 뉴스가 떴다.
비를 많이 싣고 오는 태풍인데 모레 밤중에 대한해협을 지나갈 모양이다.
“이보시게, 타파! 조금 더 ‘우틀’하여 일본 쪽으로 가시면 안 되겠는가?”

추수를 한 달 앞둔 시점이다.
제발 아무 탈 없이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길 천지신명에 빌고 또 빈다.  (끝)
<우리 논 파노라마> 클릭!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19/09/22 09:40 | 여행과 삶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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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풀잎아 at 2019/09/23 05:51
어제 남부를 휩쓸고 간 태풍 타파로 벼 걱정이 되어 들렸다가 한 편의 개그 장면을 봅니다.

참새와의 협상이 농부의 마음임을 알기에^^
아마 표준어로 쓰셨다면 리얼함이 떨어졌을 겁니다.
대구에서 살아 본 제게는 귓가에 그 음률이 살짝 스칩니다.

태풍에도 벼논이 무탈하기를 빕니다.
Commented by 백산 at 2019/09/23 19:49
그노무 '타파'가 적은 부분이지만 벼를 쓰러뜨리고 갔습니다.
오후에 가서 일일이 묶어 세워 두고 왔습니다.
(자세한 건 영농일지에)
그만하기 다행이라 여깁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onamu6002 at 2019/09/23 12:21
나락이 아주 대풍인듯합니다.
수고하신만큼수확량이 많았음 좋겠습니다.
이곳은 지난번 태풍으로 많이 넘어졌는데~~
어제 물폭탄까지 맞아서 말이아니랍니다.
농사지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Commented by 백산 at 2019/09/23 19:51
sonamu6002님 반갑습니다.
농부이신가 봅니다. ^___^**

물폭탄!!!!
제 논은 그나마 적은 부분만 쓰러져 오늘 오후에 아내와 둘이 가서 모두 일으켜 세워 묶어두고 왔습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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