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나의 독후기20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을 읽고

부제 :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다

“암 환자의 딸이 암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 상실과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격려”
현직 종양내과 의사인 지은이는 중학생 시절 아버지를 담낭암으로 잃었다.
암 투병하던 아버지와 간병하던 어머니가 함께 쓴 병상일기를 밑절미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병마에 고통 받던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추억과 간병인으로서 어머니가 겪은 고통, 자신이 의사로서 의료 활동에서 느낀 여러 애환과 제도적 문제점은 물론 수많은 환자와의 만남과 이별을 비교적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환자와 그 가족에 대한 짙은 사랑과 연민이 스며있다.

책을 읽으며 구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부모님 투병일기를 읽는 대목에서는 울컥하기를 몇 번인지 모른다.

의사로서 전문적이거나 여성의 감성으로 섬세하게 풀어내는 의료 활동과 얽힌 이야기들은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읽기에 어렵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아 술술 익히는 재미도 있다.

지금 이 시간에 죽음 앞두고 육체적, 심적 고통을 받고 있는 수많은 환자나 그 가족들이 읽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하는 책이다.
환자는 품위를 잃지 않고 고귀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고 가족들은 삶과 죽음 대한 자기성찰의 기회가 될 것이며 앞으로의 삶의 질이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더불어 나의 죽음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몇 가지 다짐한 게 있다.

첫째, 나는 연명치료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내가 의식이 없더라도 절대로 하지마라.

연명치료가 의미 없다는 의학적 진단이 내려지면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리라.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억지로 되살리려 하지 않으리라.

가족 중 누군가가 중병에 걸리면 가족 모두가 이성이 마비상태가 되기 쉽다.
의학적 치료가 더 이상 의미가 없거나 불가능한데도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치료에 매달리려 한다.

"살고 싶어서, 살리고 싶어서.”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오래 사용한 기계가 고장 나고 망가지듯 나이 듦에 따라 사람의 몸도 망가진다는 걸 인정하면 된다.

더 이상 의미 없는 진료로 나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건 바라지 않는다.
결단내리기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모두에게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둘째, 나는 대체요법을 거부한다.

“무슨 병에는 무엇이 좋다더라.”
“그 병에 무엇 먹고 나았다더라.” 등의 “~카더라”식 감언이설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대체요법도 유행을 탄단다.
굼벵이-개똥쑥-상황버섯-겨우살이-태반주사-온열치료... 등.

암 등의 중증 환자나 가족들을 유혹하는 수많은 대체의학이라고 부르는 근거 없는 치료법들이 유행을 탄다는 건 그 효과가 없었거나 미미했다는 반증이지 않겠는가.
그런 곳에 쓸 돈은 가족들을 위해 쓰겠다.

셋째, 더 이상 의학적 치료가 어렵고 나의 고통이 극심할 지경에 이르면 '호스피스' 도움을 받으리라. 

참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은 물론 죽음에 대한 공포나 삶에 대한 갈망으로 병마보다 더한 마음의 고통도 받기 싫다.
내 마지막 가는 길은 품위를 잃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게 '호스피스' 도움을 받길 원한다.

지금 이런 단호한 마음이 실제로 나에게 죽음이 닥쳤을 때도 모든 걸 내려놓고 실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끝)

<공감한 문장>

1.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그들을 돌보지 않는 것을 우리는 비정하다고, 비도덕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돌봄의 책임을 어느 누군가에게 의무인 양 전적으로 떠맡기는 것은 비도덕적이지 않은가. p.47

2.
슬픔은 그 한가운데에 있으면 들여다볼 수가 없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을 때 비로소 그 결이 보인다. p.84

3.
죽음이란 이 애물단지 같은 몸뚱이에서 벗어나는 고통의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재가 된 할머니를 보니, ‘이젠 볼 수 없다는 아득한 슬픔이 죽음의 실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p.84

4.
병원에서 슬픔을 공부할 기회는 언제나 있지만, 그것을 일상에서 건져 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것부터 시작하자.
죽음을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타인의 슬픔의 깊이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저리 너머 저 심연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 p.86

5.
그 누구도 엄마에게 잘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고맙다고,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아픈 남편을 돌보는 삶 그 자체를 걱정했고, 남편 없이 살아갈 날들을 걱정해주었지만, 엄마의 삶을 긍정하고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를 포함해서…… 엄마는 이에 죄책감과 회피라는 방어기제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p.91

6.
환자나 가족들이 임종 가정에서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박동이나 호흡만을 유지시키는 연명치료에 집착하는 것을 ‘의료집착’이라고 부른다면,
치료가 더 이상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항암치료 자체에만 집중하게 현상을 나는 ‘항암치료에 대한 집착’이라고 부르고 싶다. p.103

7.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킨다.
빛나는 지성도 슬픔 앞에서는 무릎을 꿇게 만든다.
그 틈새로 흘러들어 채워지는 것은 신비, 초자연 따위에 대한 기대와 환상, 슬픔을 잊게 해주는 맹목적 믿음.
그 믿음을 미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장사꾼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정한 인술을 펼치는 재야의 실력자인양 현혹하고 있다. p.115

8.
항암제 중단, 연명치료를 받지 말자는 설득은 포기가 아니라 환자의 안위를 위하는 최선의 결정이다. p.154

9.
환자들이 죽기 전 소원이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아니라 더 소중하고 값진 일이었으면 좋겠다.
가족과 함께 손잡고, 껴안고 대화를 나누는 일. 같이 식사를 하는 일. 추억의 장소에 가보는 일. 화해하고 사랑하는 일. p.166

10.
죽음이 앗아갈 것을 떠올리며 두려워하자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끝까지 꽉 찬 삶을 살 수 있기를, 마지막까지 소중한 것을 놓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써본다. p.226

11.
나는 울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울자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죽음은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비극이 아니며, 당신의 비극 역시 당신만이 겪어야 하는 운명적인 고통은 아니니 부끄러워 말고 마음껏 울자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슬픔은 의외로 도처에 널려 있고 우리는 모두 슬픔을 견디며 살아간다. p.228쪽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19/10/07 16:52 | 교육단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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