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영농일지(21) 추수를 앞두고
<추수를 앞두고 - 타는 심정으로>                                                                                                                                                                                                                                                                                                   <사진 클릭!>

점점 더 쓰러지고 타서 말라죽어가는 벼.
애써 외면하고 싶었지만 추수를 해야 하기에 16일(수요일) 오후에 논으로 갔다.
쓰러지고 병충해 입은 벼 상태를 살펴보니 애가 타지만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긴다.

이제 수확해도 될 만큼 낱알이 여물어진 것 같아 피해가 더 늘어나기 전에 하루바삐 추수하고 싶은 마음에 콤바인 사장님과 통화한다.
사장님도 추수 일정이 빡빡하여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가늠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고심하다 19일 토요일에 해주겠다고 하신다.
정확한 시간은 다시 알려주겠단다.
통화를 끝내며 안심한다.

그런데 추수하는 토요일은 기상청 일기예보에 흐린 날로 예보되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비 예보로 바뀌어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1~4mm 예보라 잠시 가랑비 정도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추수 하루 전날인 금요일에 월출산 일출 출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예상보다 훨씬 굵은 비가 내린다.
이 정도로 많이 내리면 내일 추수는 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길고 거친 한숨을 토한다.

‘또 며칠이나 늦춰져야 하나?’
‘피해는 얼마나 더 늘어날까?’

비는 계속해서 약해지지 않았고 해거름까지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저녁답에 근심 가득한 마음으로 콤바인 사장님과 통화하니 예상대로 내일(토요일)은 할 수 없고 월요일에 해주시겠단다.

21일 월요일 기상예보를 확인하니 화창한 날씨다.
그날엔 꼭 추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

올해는 유별나게 늦장마로 벼꽃이 필 무렵부터 비가 잦았다.
3차례 병충해 공동방제를 했으나 잦은 비로 약 효과가 떨어졌던지 벼멸구 피해를 입었다.

자농한 지 6년 만에 병충해 피해를 입기는 처음이다.
거기다 벼가 여물어 갈 무렵부터 링링-타파-미탁 등 태풍이 연이어 3개나 우리 지역을 강타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 벼 상태가 걱정되어 논에 달려갈 때마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적은 편이었다.
3차례의 세찬 비와 강풍에도 꿋꿋하게 버텨준 벼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지금 드러난 피해들은 태풍으로 인한 피해라기보다는 벼멸구가 벼 밑동을 갉아먹어 약해진 벼가 쓰러지거나 말라죽은 이유가 크다.

쓰러진 벼와 병충해로 말라 죽어가는 벼를 바라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이대로 가면 추수할 때 즈음이면 피해가 막심할거란 걱정이 들어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확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보다는 서서히 타듯이 말라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여름 내내 땀흘려가며 가꾸어온 벼들이 단순히 금전적 수입의 대상보다는 자식 같다는 느낌이 더 컸던가보다.
내 비록 얼치기 농부지만 내 안에 생명존중의 진정한 農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자연의 거대한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그건 내 노력과 능력 밖의 문제니까 온전히 받아들이자.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지니까.
그래야 계속 보람찬 마음 잃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고통의 노동이 아니라 생명을 키우는 조금은 거룩한 노동이 되어야 하니까. (끝)

<지금의 우리 논 상태> 병충해 피해가 점점 확산되어 가지만 예상보다는 더디게 진행되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19/10/19 19:25 | 여행과 삶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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