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나의 독후기24 아직도 갈 수 없는 산
<아직도 갈 수 없는 산> 사진집을 읽고
‘지리99’ 운영진이신 ‘해영’님이 사진집 2권과 책 2권을 보내주셨다.
사진집 두 권은 안승일님의 삼각산(북한산)과 백두산 사진집이다.

삼각산 사진집은 큰 감흥이 없었는데 백두산 사진집을 펼치는 순간 눈동자가 커지며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내가 보던 천지를 중심으로 여러 봉우리가 둘러싼 흔한 백두산 사진이 아니었다.
한 점 한 점 모두가 감동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는 걸작이었다.

인생의 절정기 20년을 백두산 사진에 비쳤고 단순 피사체로서가 아니라 백두산의 영혼을 찍고자 했다.
그가 바로 안승일이다.

나는 아직 백두산을 올라보지 못했다.
2009년 전교조 주최 남북교사교류의 일환으로 북녘 땅 방문과 백두산에 오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방북 불허로 가지 못한 쓰라린 기억만 남아있다.

사진에 몰두하면서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담아보고 싶은 욕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 번도 실행할 마음은 먹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백두산 촬영을 할 마음의 준비조차 되지 않았던가보다.
안승일의 백두산 사진을 보고나서는 사그라진 불씨를 다시 지펴본다.
카메라 놓기 전에는 한 번이라도 출사 가야겠지.

귀한 사진집 선뜻 보내준 해영님께 감사드린다.

사진집의 제목이 『아직도 갈 수 없는 산』이다.
그의 말에서 이런 제목을 붙인 이유를 알 수 있다.

“백두산은 아직은 갈 수 없는 산입니다.
내 민족의 산인데도 중국 땅으로 빙 돌아가서 남의 산처럼 먼데서 바라보기만 해야 합니다.
분단 조국의 현실은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우리들 마음속에서 차츰차츰 멀어지게 했습니다.”

안승일은 백두산에 대해 이런 안타까운 마음과 애정을 듬뿍 가슴에 품고 촬영에 임했다.

안승일의 백두산 사진을 보면 숨이 턱 막히고 필설(筆舌)로는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감동에 전율까지 인다. 
그의 사진집에 실린 89점 어느 작품 하나도 범상치 않은 것이 없다.

거기다 사진 한 장마다 곁들인 해설 또한 매우 훌륭하다.
사진에 대한 단순한 해설이 아니다.

촬영 과정과 당시 작가의 감성은 물론 백두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의 남다른 사진관과 역사관, 민족의식도 엿볼 수 있다.
작품을 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안승일은 자신의 백두산 사진을 두고 “안승일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런 작품은 없다.”고 했다.
어찌 보면 교만하다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호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 두 점이면 몰라도 89점 사진 모두가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누가 백두산에 미쳐 20년 동안 틈만 나면 달려가고, 그것도 모자라 시도 때도 없이 오르기 위해 백두산 아래에 방을 얻어 놓고 기거할 수 있겠는가.
중국 쪽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백운봉 부근에 한겨울 영하 30~50도 혹한의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몇날 며칠을 텐트나 설동(눈구덩이) 속에서 지내며 사진을 찍겠는가.

한겨울 지리산 출사 때 영하 10~20도의 추위에 한 두 시간도 참지 못해 카메라 내팽개치고 하산하려고 했던 나는 얼마나 한심한가.
안승일 그의 최고의 사진 한 컷을 얻고자 하는 열정은 언감생심 흉내도 못 낼 것 같다.

“나는 20살이 되기도 전에 산사진에 빠졌다.
하지만 산이 비밀스런 품을 열어주는 촬영 포인트를 감 잡기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나이 오십에 가까워서야 비로소 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산을 가슴으로 품을 수가 있었다.
그간 열심히 사진 찍은 덕이 아니라 산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그 속으로 들어가 산과 아예 살았던 것이다"라고 했다.

자신이 원하는 산 사진 한 컷을 얻기 위해 30년을 어떤 각고의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오르고 또 오르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얻은 사진이니 어찌 감동이 없었을 수 있겠는가.

산 사진에 입문한 지 고작 3~4년 밖에 되지 않은 내가 기대한 풍경을 담지 못했다고 “쪽박!” 운운하는 건 너무 우습지 않은가.
되새길수록 부끄러움에 몸서리 칠 정도다.

산 사진은 여러모로 힘들다.
사진적인 결과만 놓고 보면 10번을 출사 가면 9번은 헛걸음이다.

올해는 지금까지 높은 산 일출 출사만 58회 갔는데 만족한 출사는 두어 번은 될까?
올해 찍은 산 사진을 보고 또 봐도 마음 설레는 사진은 한 컷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 헛걸음조차 좋은 사진 얻기 위한 과정이요 밑거름이라 생각하겠다.
“대박” 풍경은 내가 애쓴 만큼 산이 내게 주는 보상이라 여기겠다.
내 입에서 두 번 다시 “쪽박!”은 없다.

끝으로 안승일은 작품 하나하나에 혼을 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마구잡이식 셔트질만 해댄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다.
비록 혼은 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의 말대로 “자연을 복제해내는 단순한 인간복사기”는 되지 말자.  (끝)
- 덧붙임1 - 

<기억하고 싶은 문장> 그의 작품에 곁들인 해설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옮긴다.

1. 빛을 읽는 감각도 중요하지만 피사체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우선이다
2. 온 인생을 사진에 걸고 승부하겠다는 각오 없이 “사진이나 해 보겠다”고 덤비지 말라고 경고한다.
3. 눈이 내린 후에 눈 사진 찍겠다고 가면 이미 늦는다. 눈이 오기 전에 미리 산에 올라 기다려야 한다.
4. 산을 알고, 산에 살며, 산과 함께 숨 쉬며 찍은 사진만이 감동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5. 사진은 손가락만으로 찍는 게 아니다. 가슴으로 찍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을 가진 작품이 탄생한다.
6. 하지 전후로 장군봉 위로 솟아오르는 해가 연출해내는 아침노을을 잡아내고 싶었다. 안승일은 이 사진을 찍기 위해 해마다 하지 무렵 청석봉에 올랐다. 그렇게 십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고야 찍었다.
7. 사진은 맑아야 한다. 탁한 느낌은 안 된다.
8. 얼렁뚱땅 허둥지둥 들여다보고 대충대충 셔트를 누르면 사진이 어설퍼진다. 산이 내게 베풀지 않으면 산 사진은 하지 못한다.
9. “백두산 사진을 중국 쪽에서 찍어야만 진정한 백두산 사진이라 걸 알았다.” 그래야 우리 땅에 있는 백두산의 주봉인 장군봉을 담을 수 있으니까.
10. “그 순간에 거기 있기”가 안승일의 사진 찍는 방법이다.
11. 사진, 어떻게 찍을 것인가? 그 생각보다는 사진, 왜 찍을까? 그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12. “진실한 것만이 아름답다”는 신념을 가진 안승일은 그리하여 자신이 진실할 때 함께 진실해지는 산하의 아름다움에 빠져 산악사진가가 된 것이다. 산의 진실은 그 진실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결정적 순간에 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때문에 기술이나 인간의 예술세포 이전에 산악사진가가 갖추어야 할 자질의 조건으로 체력과 인내심의 중요함을 안승일은 늘 강조해왔다.

<사진 클릭! > 아! 이런 사진 찍을 기회가 한 번이라도 온다면.....
- 덧붙임2 -

<작품 소개> 사진집에 실린 몇 작품 소개합니다. / 해설부분 인용 및 재구성 하였음

1. 안승일은 이 사진에서 더 바랄게 없다고 했다. 최고의 시간에다 최적의 태양광이었다.
2010년 추석 무렵에 찍었는데 그는 20년 동안 추석 때는 늘 백두산에 있었다.
그럼에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조상 뵐 면목 있다”고 외쳤다.
2. 7월 중순 쯤에 (감시용)철탑에서 찍은 사진인데 백두산 자락에 야생화가 만발한 풍경이다.
안승일은 잠깐이지만 산 사진 그만 두고 꽃 사진 찍을까 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사진에 보이는 꽃은 오른쪽의 키가 큰 박새, 하얀색 꿩의바람꽃, 노란색 금매화, 주홍색의 하늘말나리다.
 
3. 백두산 관광 전초기지인 이도백하 부근 철탑에서 백두산을 찍었다.
이 사진 찍고 철탑에서 잠시 마음을 놓았다가 카메라를 떨어뜨려 묵사발이 되었다.
“거참 잘 됐다. 집에 가고 싶던 차에 아주 잘 됐다. 내가 안 떨어졌으니 아주 잘 됐다.”
4. 사진 왼편에서 가장 높게 보이는 검은 봉우리가 백두산에서 가장 높은 ‘장군봉’이다.
그럼, 내가 찍은 위치는 중국 땅일까? 조선(북한) 땅일까?
능선 위에 <6호 조선-중국경계비>가 서 있긴 해도 금줄이 없다.
어깨에 총을 멘 조선 병사가 다가 오길래 물었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이 중국이요? 조선이요?”
조선 병사가 대답했다.
“중국 사람이 앉아 있으면 중국 땅이고 조선 사람이 앉아 있으면 조선 땅이지.” 우문현답!
5. 하지 앞뒤로 열흘쯤 장군봉 위로 솟아오르는 해가 연출해내는 아침노을을 잡아내고 싶었다.
안승일은 이 사진을 찍기 위해 해마다 하지 무렵 수 차례 새벽 1시에 출발하여 청석봉에 올랐다.
그렇게 십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2006년 하지 무렵에 찍은 사진이다.
6. 천지는 한겨울 8m가 넘는 두께로 어는데 6월이 되어야 해빙기를 맞이한다.
얼음이 녹은 부분이 묘하게 한반도를 닮았다.
그에게 백두산신령이 내린 선물인가? 그 누가 다시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겠는가!
7. 북한 양강도 혜산시 건너편 중국 조선족 자치현 장백을 출발해 압록강을 거슬러 오르다 찍은 사진이다.
건너편 북한 땅 초소의 어린 병사에게 아리랑 담배를 곽 채 던져줬다고 했다.
사진 찍은 곳 앞에는 철조망이 있단다. 그가 선 자리에 나도 서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치솟았다.
8. 백두산 천지에 출렁이는 한민족 영혼에 세례를 받아 백두산 풍광을 영상화하는 작업을 배달겨레의 하늘이 내린 소명으로 받아들이며 안승일의 백두산 산행은 20년이나 이어진다.
국내에 머문 시간보다 백두산 꼭대기나 그 언저리에서 눌러 보낸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1994년, 처음으로 백운봉 가던 날, 용문봉부터는 가을에도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진을 배운다고 함께 다니던 철인삼종경기 완주자 권종렬의 괴력이 눈을 헤치지 않았으면 갈 수 없었던 길.
밤늦게 돌아오는 길, 미친 바람이 우리의 발자국을 모두 지워버렸다.
김석찬 동무가 불을 비추고 마중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19/11/23 14:57 | 교육단상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baeksan.egloos.com/tb/324339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깨알같은 동장군 at 2019/12/15 09:20
이 글을 읽으며 책이 주인을 제대로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산님의 감동을 통해 전달 받는 백두산은 제가 책으로 만났던 백두산 보다 더 큰 울림을 줍니다.
Commented by 백산 at 2019/12/15 21:24
'깨알같은 동장군'님 반갑습니다.
저도 좋은 책 만나 기뻤고 산사진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 고무되어 있습니다.

저도 카메라 메고 백두산 올라봐야 하는데 언제일지...
감사합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