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독후기14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을 읽고
법적 노인이 된 이후로 늙어감과 죽음에 대해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문득 문득 죽음이 한 발짝 더 가까워졌음을 느낄 때가 많아졌다.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인가, 두려움과 고통에 시달리며 죽을 것인가?”

때로는 죽음보다 늙음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올 때도 있다.
예전만 못한 신체기능 때문이다.
몸놀림이 점점 둔화되어 감을 절감한다.
체력이 자꾸 떨어져 감을 출사 때마다 느낀다.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문제는 어쩌면 하나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죽은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제목 때문에 나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이 책은 한 때 미국의 계관시인이었던 작가의 산문집이다.
모두 열 네 편의 산문이 실렸다.
저자가 여든 이후에 쓴 에세이들이다.

시인의 산문이라 그런지 문장이 깔끔하다.
군더더기가 없어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이 책은 말한다.
늙음으로써 여러모로 불편하고 조금은 쓸쓸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라고.
매일 비슷한 날들일지라도 죽기 전까지 삶은 이어지니까 말이다.

“탄식하고 우울해” 하는 것보다는 “창가에 앉아 새와 헛간과 꽃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한다.

저자는 늙음을 원망하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노년의 일상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즐기며 산다.

그런데 아쉽게도 기대한 만큼의 공감이나 감동은 적다.
더구나 제목처럼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에 대한 답은 없다.

그저 저자 자신의 지난날의 삶과 노년의 삶을 담담하게 회고할 뿐이다.
거기다 지극히 저자 개인적인 늙어감에 대한 일들이라 공감할 만한 내용이 아니라 좀 실망했다.
그의 글을 읽고 노년의 삶에 대한 작가만의 특이하거나 대단한 삶의 방법에 대해 알고자 큰 기대를 했던가보다.

유명 매체나 여러 작가들의 추천평은 요란했지만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다.
늙어감, 죽음에 대한 특별한 영감(靈感)을 주지는 않았다.

그의 삶의 모습과 삶의 철학을 통해 내가 스스로 길을 찾고 느껴야 한다는 걸 책을 덮고 나서야 알았다.
결국 나의 늙어감과 죽음에 대한 고민은 온전히 나의 몫일 뿐.  (끝)

<덧붙임>

기억하고 싶은 문장

1.
나는 내 몫의 원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사실 노년이란 연속적인 상실의 통과의례다.
마흔일곱 살이나 쉰두 살에 죽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그게 더 바람직하다.
탄식하고 우울해해 봤자 좋아지는 건 없다.
종일 창가에 앉아 새와 헛간과 꽃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편이 더 낫다.
나의 일상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기쁨이다.” p.13~14

2.
노령이라는 세계는 미지의 우주이자 뜻밖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낯선 것이고 노인들은 별개의 생명체다.
피부는 녹색이고 머리는 두 개인 데다 안테나가 달려 있다.
즐거운 사람일 수도 있고 짜증나는 인물일 수도 있다(슈퍼마켓에서 통로를 막고 비켜줄 줄 모르는 노인들을 봤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이들이 영원히 ‘타인’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여든 살이 되면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잠시라도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반드시 깨우침이 온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바로 느끼는 것이다. p.18

3.
글쓰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고쳐 쓰기에 있다.
내 초기 원고는 비참한 수준이다.
처음에는 ‘움직이다’ 같은 일반 동사를 ‘빠르게’라는 부사로 수식한다.
60차례 시도한 끝에 나는 특정한 재치 있는 동사를 이끌어내고 부사를 버린다. p.26

4.
퇴고는 시간이 걸리는 길고도 즐거운 과정이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 중 일부는 80차례 이상 고친 것이고 가장 적은 것이 30차례 퇴고한 것이다. p.27

5.
‘나’라는 주어로 문단을 시작하지 말라.
문단 뿐 아니라 문장 자체를 인칭대명사로 시작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p.29

6.
행복한 결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행복하다면 아직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p.67

7.
정말 바보처럼, 나도 처음에는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걸 자랑스러워했었다.
분에 넘치는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 대부분은 기부자들이다.
하지만 학문기관들은 소수의 문화·정치적 인물에게도 박사학위를 수여함으로써 그들의 기금 조성 행위를 미화시키려 한다. p136

8.
죽음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것은 70대의 어느 지점부터였다.
부고 기사에서 사망자의 나이를 더 이상 체크하지 않게 됐다.
이전에는 만약에 내가 쉰한 살인데 죽은 사람이 쉰세 살이면 잠시 염려가 됐었다.
죽은 이가 쉰한 살이고 내가 쉰세 살이면 안심이 됐다.
사람이 아주 오래 살면 가족 중에 제일 연장자가 되는 순간이 온다.
밤이 밀려오는 시각 언덕 꼭대기에 혼자 걸터앉아 있는 것이다.
내 어머니는 아흔 살에 나를 유족으로 남기고 떠나셨다.
곧 내가 그 명예를 내 아들에게 넘길 것이다. p.150

9.
내 나이에 이르게 되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어떨 땐 숙연하게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죽는 건 별 볼 일 없는 일이라는데 동의한다. P.154

10.
이제 활자 속에서 말고는 나는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다.
곧 죽을 거란 걸 아는 게 어쩌면 홀가분하다.
왜냐하면 다음 오르가슴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니까.
난 야망이 있었고 이제 그 야망의 미래에 대한 계획은 없다.
지금 쓰고 있는 에세이밖에는 말이다.
내 인생의 목표는 화장실까지 가는 것이다.
과거에 나는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을 늘 들었다.
지금 그 외에 다른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p.156

11.
(그의 아내)제인은 번쩍번쩍한 병원 침대에서 축을 수도 있었지만 집을 택했다.
나도 그럴 것이다. 가능하다면 제인과 같은 침대에서 말이다.
오늘날 노인 대부분이 이윤을 추구하는 말기암 환자용 다인실 침대에서 죽어간다. p.162

12.
내 난제는 죽음이 아니라 늙음이다.
내가 균형 감각을 잃어가는 것을, 자꾸만 뒤틀리는 무릎을 걱정한다.
일어나고 앉는 게 힘들어지는 걸 걱정한다.
어제는 안락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앉아서 잠드는 사람이 아니다.
매일 매일 게으름이 나를 무기력하게 한다. p.198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20/05/20 18:40 | 교육단상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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