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독후기16 고난과 웃음의 나라
「고난과 웃음의 나라」를 읽고
“문화인류학자이자 구호활동가, 탈북 청소년 교육자이기도 한 저자 정병호(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약 20년 동안 10여 차례 방북해 기근 구호활동을 펼치고 조-중 접경지역에서 탈북민과 교류하는 등 활동가로 활약하며 현장연구를 진행해왔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의 풍부한 대북접촉 경험을 기반으로 북한주민의 삶을 다채롭게 풀어냄과 동시에 북한체제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균형 있게 서술한 책이다.”

필자는 2010년부터 북한에 인도적 지원업무를 해 왔다.
오늘날의 북한에 대해 때론 우호적인 시각으로, 때론 비판적인 시각으로 직접 본 대로 느낀 대로 가감 없이 쓴 책이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들을 바르게 이해해야 효율적인 남북대화와 교류, 나아가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탁월하다.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은 늘 어렵다.
녹록치 않은 버거운 상대다.

“악수-웃음-대화-갈등-폭언-결렬-비난, 다시 악수-웃음-대화…….” 북한과의 대화과정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란다.
그런 과정을 감안하며 인내심을 갖고 대화해야 한다.
북한이 변하지 않는다고 대화를 포기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과정이 우선 필요하다.

북한의 적대적 도발에 대해 자존심을 앞세우거나 감정적으로 맞대응 하는 건 최선의 길이 아니다.
서로 감정적 대응을 하다보면 더욱 악화되어 갈 뿐이라 자제해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막가파식 대응은 남북이 공멸의 길로 갈 뿐이다.
이 땅의 평화정착과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우리만이라도 인내심을 갖고 자중해야 한다.

계속되는 북한의 의심쩍은 의중과 오락가락 갈지자 행보가 못미더워도 남북대화와 나아가 평화정착을 위한 교류의 끈은 놓지 말자.
미우나 고우나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갖고 대화와 교류를 해나가야 한다.
정치적 부담이 적고 비교적 손쉬운 민간교류를 지속, 확대해 나가는 길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출판사 리뷰 한 부분을 옮기며 끝을 맺는다.
“오랜 세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남과 북은 서로의 경험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감수성을 연마해야 진정한 공존을 꿈꿀 수 있다.
북한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의 안개를 걷어내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 책이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작은 한걸음이 되리라 기대한다.”  (끝)
= 덧붙임1 =

<특별히 내 호기심과 감정을 자극한 내용>

1.
오늘날 북한 아이들이 놀이가 인상적이었다.
바로 내가 어릴 적에 놀던 놀이와 똑 같은 놀이를 하고 있다.
딱지치기, 총싸움,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말타기, 자치기, 알치기, 팽이치기 등

오늘날 전자오락에 빠진 남쪽 아이들은 그런 놀이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교사시절에 헛꿈을 꾼 적이 있다. 그것도 결연하게.
교단을 떠나기 전에 통일이 되면 북녘 땅 시골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꿈이다.
북녘 아이들과 공부하고, 내 어릴 적 즐겨하던 딱지치기, 땅따먹기, 자치기도 함께 하고 그러다 배고프면 라면 끓여 같이 나누어먹는 꿈. 

물론 헛꿈이었지만 나 살아생전에 통일이 된다면 북녘 땅 시골학교 교정에서 그 아이들을 공부하고 노는 모습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한정 없이 행복할 수 있겠다.

2.
책을 읽다 평성육아원 방문 장면에서 책을 덮고 한동안 울컥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 결핍으로 작고 가느린 모습의 아이들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저 아이들에게 먹일 최소한의 영양식마저 정치논리에 막혀 지원할 수 없었다니 말이 안 된다.

제3세계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식량을 지원하는데 같은 민족의 아이들이 저렇게 까지 참혹한 상황인데 정치적 이유로 지원을 못했다는 걸 알고 너무나 답답하고 억장이 무너졌다.
제발 인도적인 지원은 기본 요건만 충족하면 토 달지도 말고, 생색내지도 말자.

3.
항일 독립투쟁에 희생된 독립지사들이 남긴 고아들을 위한 초중등 과정의 기숙학교인 ‘만경대혁명학원’ 설립을 보고 크게 놀랐다.
김일성 일파의 정치적 목적도 있었겠지만 목숨 걸고 풍찬노숙하며 일제에 항거한 동지들, 독립지사들에 대하여 제대로 된 보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남쪽은 어떠했는가.
미군정은 그들을 푸대접 했고 이승만 일파는 그들을 탄압했다.

정적으로 여겨 암살하거나 빨갱이로 몰아 궁지로 몰아넣었다.
일부 지사들은 정치적 이념과 상관없이 살기 위해 북한으로 피신을 해야 했다.
그런 그들은 독립 활동을 인정받지 못했고 남은 가족들은 가난을 면치 못했으며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비참한 삶을 살아야했다.

독립 운동가를 대하는 남북한의 극명한 차이에 허탈했다.
친일파를 앞세워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이승만 일파의 만행에 분심이 탱천했다.
그런 반민족, 반민주적인 작자를 이 땅의 자칭 보수라는 수구, 극우파들은 ‘국부’라 추앙한다.

4.
행복이라는 건 상대적인 거라서, 종종 한국으로 온 탈북자들이 정착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한국의 냉정한 인간관계와 경쟁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오히려 사람들이 화목하게 사는 가족 같은 국가와 소박한 삶이 그립다니.

몇 해 전에 탈북자 중에서 남한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북한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답한 비율이 예상보다 훨씬 높았던 기억이 있다.
자유와 경제적 풍요만이 행복을 보장하는 건 아니가보다. 

<북한 아이들 놀이 모습> 출처  / 원다스 카페
=덧붙임2=

<기억하고 싶은 문장>

독후기에 더 많은 내용을 담기 어려워 주요한 내용은 따로 분문을 옮긴다.
책에 소개된 오늘날의 북한의 실상에 대해 한 가지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고르고 골라 힘든 타이핑을 마다하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정치 체제, 대남·대외전략과 인민들의 경제, 교육 등의 일상생활을 개략적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제1장 청년장군

1.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협상이 시작했다.
내가 북측 당국자를 처음 만났던 베이징 켐젠스키호텔과 같이 화려한 호텔들을 전전하면서 “악수-웃음-대화-갈등-폭언-결렬-비난, 다시 악수-웃음-대화…….” 이런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거듭되는 회담소식에 접할 때마다 광명이가 생각났다.

(핵)전쟁을 불사하겠다거나, 배때기를 갈라버리겠다는 말은 위협이기도 하지만 비명이기도 하다.
우리를 인정해 달라, 그리고 이해해달라는 절박한 사람들의 말법이고 몸짓이다.
무기를 내려놓게 하려면, 또 죽음의 춤을 멈추게 하려면 우선 그 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 29쪽  

2.
핵폭탄과 미사일 개발은 어떤 일이 있어도 체제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내외에 과시해서 권력세습을 인정받겠다는 과도기의 생존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세습) 그 자체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47쪽

3.
김정은 시대의 북한권력이 발전국가 모델을 채택하게 된 것은 이미 폭넓게 진행된 아래로부터 변화 때문이다.
대기근시기에 배급이 끊긴 인민들이 생존을 위해 자생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장마당은 허가 받은 곳만 현재 전국적으로 400여 곳에 달한다.
이미 유명무실해진 ‘배급제’는 제 기능을 못하고 주민들의 생활은 전면적으로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 48쪽

4.
김정은 시대는 빠른 속도를 요구한다.
김일성 시대의 ‘천리마 운동’이 김정은 시대의 ‘만리마  운동’이 되었다. ~중략~
더욱 중요한 변화는 그동안 보안을 이유로 통제되었던 휴대전화가 빠르게 보급되어 갔다.(2018년 기준 총 240만대, 전 인구의 약 10%)
전국의 시공간적 거리를 압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 50~51쪽

5.
오늘날 북한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만 보고 남한의 초기 발전국가시대를 연상하며 30~40년 뒤떨어진 나라라고 단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전후 일본이 30년 만에 서구 열강들보다 더 발전된 산업국가가 되었고, 문화혁명으로 피폐해진 사회주의 중국도 개혁개방 30년 만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 52쪽 

제2장 행복을 교시하는 나라

6.
청소년기에 남한에 와서 벌써 20년 가까이 살아온 탈북청년이 무심코 이 노래(세상에 부럼 없어라)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왜? 그리워?”
“아뇨, 근데 이상한 행복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이곳에서 가장 힘들고 혼란스러운 것은 비교와 경쟁이라고 했다.
모두가 미친 듯 일하고 탐욕적으로 소비하는 끝없는 경쟁 속에서 차별과 소외감 때문에 불안하다고 했다.
냉정한 인간관계로 늘 외로운 이곳에서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우리는 모두 다 친형제”라는 그 돌아갈 수 없는 곳의 소박한 노랫말이 문득 그립다고. - 66쪽

7.
고마움은 선물을 주고받는 그 자리에서 바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그와 같거나 더 큰 선물로 확실하게 갚는다.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부시맨들은 아무리 심한 가뭄이라도 멀리서 친척이 찾아오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샘물을 나눈다.
그런 문화가 척박한 환경에서 사는 그들의 생존열쇠다.
북한 당국은 소떼를 몰고 온 정주영 회장에게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개발권으로, 감귤을 보내온 제주도민들은 전세기편으로 직접 평양에 오게 하는 식으로 그때의 고마움을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계산(정산)했다. - 69쪽
 
8.
아무리 모금이 절박해도 북한 아이들의 비참한 사진을 앞세워서 남한 아이들의 마음에 이질감과 우월감을 심지 않으려 했다.
언젠가 어깨동무하고 함께 걸어갈 짝꿍 같은 친구에게 자기 얼굴을 그려 보내주자고 했다.
다만 그 친구가 지금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격려의 선물을 모아 같이 보내자고 했다. - 80쪽

9.
주는 측이 손쉽게 자기 편의대로 집행하게 되는 것이 일방적 구호활동의 위험성이다.
주는 측이 성찰적으로 돌아보지 않으면 받는 측이 여간해서는 진짜 필요한 것을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84쪽

10.
동서독 통일과정과 그 후의 변화를 현장에서 연구한 존 본만(John Boreman)의 충고가 생각났다.
‘기업을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동독의 낙후된 산업을 현대화시켜주길 기대하고 같은 업종의 서독회사에 동독기업들을 불하하자, 가정 먼저 한 일은 동독공장 폐쇄였다.
싸구려 물건을 만드는 경쟁업체를 없애는 일부터 한 것이었다.
낡은 시설과 비생산적인 노동인력을 현대화하느니 서독의 기존 생산시설을 더 가동해서 새로운 소비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을 택하더란다.
통일 후 동독지역 실업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고, 사회복지에 의존하는 무기력한 사람들이 늘어서 통일비용이 증가한 것도 이런 초기의 정책판단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 87쪽

제3장 아버지 나라의 교육

11.
(항일 독립투쟁에 희생된 독립지사들이 남긴 고아들을 위한 초중등 과정의 기숙학교인 만경대혁명학원을 둘러보며)
당시 남쪽으로 귀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과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중에는 서울 장안에 방 한 칸 구하지 못해서 남산기슭에 토굴을 파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제가 남기고 간 적산가옥은 친일파와 미군정 주변 사람들이 거의 다 차지한 상황이었다.
살아서 귀국한 독립투사들이 제대로 살 곳을 구하지 못하고 그 자손들도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는데, 독립투쟁을 하다가 부모가 희생된 고아들은 해방 후 남한사회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 104쪽

12.
북한의 엘리뜨 집단은 70년 이상 지속된 분단과 냉전상황에서 세대를 거듭한 가족적 공동운명체 관계를 다져왔다.
그들의 관계는 역사적 위기를 함께 겪으며 만들어졌고, 바로 그 위기적 상황이 장기화되는 과정을 통해 ‘특별하게’ 강화되었다. - 115쪽     

13.
현재도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수령님(장군님)”은 ‘조국’을 상징하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중략~
남한에서는 반공교육 시간에 이런 선전선동술에 넘어가지 말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북한)이란 ‘가난한 조국’의 ‘아버지’가 동포아이들 교육에 이만큼 세심한 신경을 쓰면서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정성을 기울였다는 것은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동안 돈 벌기 바빠서 그들을 교육적으로 돌보지 못했던 한국이란 ‘부자 조국’이 일방적으로 그 사실을 매도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재일 조선학교와 ‘조선(북한)이란 조국’의 관계는 부모자식간의 정서적 관계처럼 역사적으로 단단하게 맺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 120~121쪽

14.
분단 70년 동안 남·북한은 다른 역사적 경로를 걸어왔다.
양쪽의 다른 정치체제와 경제구조만큼이나 양쪽이 믿는 이념과 가치관의 차이가 현저하게 달라진 두 사회를 만들었다.
앞으로 그 둘이 각각 또는 함께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결정하는 데 각 사회구성원들이 지어내고 믿는 ‘이야기(허구적 믿음)’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125쪽

15.
예전에 평양호텔 노래방에서 만난 교수와 기자 부인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최근에 남한에서 방영된 드라마 <sky캐슬>의 이미지와 바로 겹쳤다.
(평양의 화려한)려명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는 그 자체로 거대한 ‘sky캐슬’이 되었을 것이다.
요즘 남한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그곳 사람들이 벌써 김일성대, 김책대, 평양의대를 합쳐서 ‘평양sky캐슬’이라고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 134쪽

제4장 태양민족의 탄생

16.
권력 세습은 하루아침에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수히 새로운 노래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신화가 그림으로, 연극으로, 구호로 표현되었다.
최고권력의 승계는 그렇게 장기적이고도 점진적인 상징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 141쪽

17.
(김일성이 태어난) 만경대 고향집으로 붉은 깃발을 앞세운 한 무리의 소년소녀들이 씩씩한 기상과 절도 있는 걸음으로 대오를 지어 행진해 들어왔다. ~중략~
바로 옆에서 보니 어린아이들이었다. ~중략~
2월말 삭풍을 뚫고 천리길을 걸어온 학생들이라 했다.
말하자면 지칠 대로 지친 아이들이었다.

압록강변 팔도구에서 평양까지 400킬로미터 거리를 붉은 깃발 앞세우고 14일 동안 행군해서 마침내 이곳, “수령님 태어나신 만경대 고향집”에 도착했다고 했다.
선생님이 설명하는 동안 지친 아이들의 얼굴이 자랑스러운 미소로 되살아났다. - 148~149쪽

18.
영웅신화의 서사를 통하여 김일성은 ‘민족’ 그 자체를 의미하는 은유적 존재가 되었다.
그에 대한 숭배는 개인적 숭배의 차원을 넘어서 ‘단군교’와 같이 민족의 ‘자존’과 ‘영원성’에 대한 숭배가 된 것이다.
‘김일성 숭배’는 민족 그 자체를 숭상하는 ‘민족종교’가 되어, 이제 북한에서는 ‘우리 민족’, ‘조선(한)민족’을 “태양민족”, “김일성 민족”이라 부른다. - 152쪽

19.
「아리랑공연」은 북한이 지금까지 개최한 집단체조 공연 중 최대 규모다. ~중략~
「아리랑공연」은 심각한 경제적,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오히려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들여 대규모의 공연으로 대응하는 전형적인 극장식국가의 특성을 보여준다. ~중략~
국가가 초라하게 위축된 상황일 때 더욱 스스로의 존재감을 안팎 모두에게 과시적으로 나타낼 필요가 있다.
그것을 문화적으로 익숙한 예술창작 방식을 총동원하여 종합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리랑공연」이다. - 177~178쪽

제5장 빨치산과 고난의 행군

20.
지금도 북한은 민족해방의 서사적 시간 속에서 국가의 존재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있다.
즉,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맞서서 싸웠던 항일 빨치산처럼 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이라는 최강의 제국주의 세력과 맞대결을 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긍심은 체제를 버티게 하는 근본적 힘이 되고 있다. - 189~190쪽

21.
초기에는 김일성이란 카리스마 지도자를 아버지로 여기도록 하는 개인숭배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장남 김정일에게 권력이 세습되는 과정에서 조상의 유교적 가족개념이 융합되면서 적장자 상속 논리를 강조했다.
다시 김정일의 삼남인 김정은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단계에서는 “백두혈통”이라는 “혁명의 종가”를 강조하면서 가문에 대한 충성을 주장했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문중 개념을 국가체제 안에서 제도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207쪽

22.
북한의 기근은 1995년과 1996년에 거듭 겪은 홍수와 가뭄 피해를 계기로 외부세계에 알려졌다.
하지만 기근의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사회주의 형제국’간의 ‘물물교환’ 방식의 국제경제체제붕괴 때문이다.
즉,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 공산품을 수출하고 식량과 에너지를 수입해온 북한이 더 이상 우호적인 거래에 의지할 수 없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 216쪽

23.
북한의 기근 피해가 가장 혹심했던 1995~1998년간에 남한사회가 (김영삼 정권)당시의 경제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배경에는 기근으로 인해 북한체제가 조기에 붕괴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참혹한 기근이 진행되고 있다 해도 그 기근을 발생시킨 체제가 있는 한 구호활동은 비극을 연장시킬 뿐이니, 그 체제가 붕괴되길 기다려(혹은 적극적으로 붕괴시켜) 일거에 구하자는 논리였다.

돌이켜보면 이는 ‘기근’현상에 대해 무지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혹독한 기근이라도 기근 자체는 체제를 붕괴시키지 않는다.
배고픈 사람들은 권력에 저항할 힘도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사회에서 발생한 ‘기근’에 대한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밝히고 있는 사실이다. - 220쪽

24.
이 아이들(탈북 청소년)을 통해 알게 된 기근의 실상은 참혹했다.
대부분 가족 중에 기근과 질병으로 희생된 사람이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먼저 희생되었다.
손자들을 먹이기 위해 스스로 식량을 줄이다가 죽어갔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었다.
식량배급은 1995년 큰물 피해 이전에 이미 대부분 지역에서 유명무실해졌다. -224쪽

25.
기근이 심화되면 각자가 자기의 생존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조직적인 폭동이나 혁명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진다.
극단적인 박탈감경험과 사회적 갈등은 오히려 안정된 사회질서를 바라게 된다.
기존 권력이 식량자원을 통제하면서 강한 권위를 유지하고 있으면 더욱 복종하는 현상이 뚜렷해진다고 한다. - 233쪽

26.
문화심리학자 김영훈은 이런 현상을 동아시아적인 ‘노력 신드롬’이라고 했다.
“사람은 노력을 통해서 변할 수 있다는 믿음! 대부분의 일은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는 믿음! 잘못 하는 것은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믿음!” 이런 믿음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노력만으로 해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계속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의 사회운영 방식으로서 성과에 대한 책임, 즉 모든 실패와 나쁜 일에 대한 책임을 최대한 개인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238쪽

27.
요즘 같은 세상에 핵실험까지 하면서 아이들에게 아주 미량만 있으면 되는 필수영양소도 못 챙겨주는 북쪽 권력은 통렬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럼 남쪽 어른들은 그동안 이 아이들을 위해 뭘 했나?
이 문제에 대해 남과 북의 정부 당국은 이미 알고 있었다.
2003년 봄부터 전문가들은 비교적 간단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바로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큰 정치를 하는 어른들에게 작은 아이들의 미량영양소 문제는 중요하지도 않았던 듯하다. - 246쪽

28.
남한 정치와 관료주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어려움을 줬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을 통해서 ‘인도주의적 지원’은 막지 않겠다고 늘 주장했다.

그러나 모든 물자를 준비해놓고도 허가를 받으러 가면 이런저런 이유로 새로운 서류를 보완하라고 요구했다.
최악의 경우는 마흔 번 넘게 다시 신청하도록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불가능한 자료를 요구하거나 남북관계를 핑계로 무조건 보류시켰다.
인천항 보세창고에 묶여있던 북한 영유아들을 위한 조제유 원료와 설사약, 수액자료들이 유통기한이 지나서 폐기 처리되는 일까지 있었다. - 247쪽  

29.
정치전략과 인도적 지원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전투 중에도 적군의 부상병을 돌보아주는 일에서 적십자운동은 시작되었다. 그것이 인도주의다.
주고받는 것으로 계산하는 장사나 정치가 아니다. 무조건적인 것이다. - 251쪽

제6장 차별과 처벌

30.
사회주의를 표방한다고 평등사회는 아니다.
불평등의 구조와 내용이 다를 뿐이다.
‘정의사회’를 표방한 정권이 정의롭지 못했고,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던 정부가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았던 사실은 남한사회도 이미 경험했다.

북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국가 이념은 차별 없는 평등 사회를 주장하고 있지만 인민들은 다양한 방식의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차별은 첫째 중심과 주변의 차별, 둘째 성분과 계급의 차별, 셋째 순수와 오염 관념에 의한 차별, 넷째 남성과 여성 간의 차별이다. - 255쪽

31.
인간에 대한 잔혹행위가 국가권력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 뒤에 숨지 못하게 하려면, 체제이념과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라는 자기정당화를 인정하지 않으려면,
인도주의에 대한 범죄는 시효 없이 국경을 초월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 289쪽

제7장 저변의 흐름

32.
식량과 에너지가 고갈된 절대결핍 상황에서, 내부에서 조달할 수 없는 거의 모든 소비재와 원자재, 부품은 외부로부터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외화부족과 경제제재로 국가 차원의 공식 수입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장 사람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자는 다양한 방식의 밀무역에 의존하게 되었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밀수’는 그리 심각한 범죄로 인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 봉쇄를 뚫는 보급투쟁처럼 그 나름의 명분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점에서 권력을 쥔 군과 당도 ‘비공식적’으로 밀수를 묵인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 293쪽

33.
사회질서가 엄중하던 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훔치기, 도둑질, 속이기 같은 불법행위가 어디서나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 되었다.
배고픈 어린아이부터 군인까지 식량뿐 아니라 눈에 띄는 쓸 만한 것들은 특별히 훔친다는 의식 없이 일단 가져다 썼다.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은 무슨 짓이라도 용납되는 상황이었다.
장마당에서 훔치다 잡힌 꽃제비를 “훔쳐 먹어서라도 살아남기만 하라”고 야단치듯 격려하면서 풀어주는 안전원도 있었다고 한다. - 306쪽

34.
평양의 길거리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나와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무언가를 하며 열심히 놀았다.
딱지치기, 총싸움, 고무줄놀이, 땅따먹기를 하는 아이들이 길가, 빈터, 공원 어디서나 눈에 띈다.
전차 선로에 네 녀석이 머리를 맞대고 침을 뱉고 못을 올려놓았다가 야단맞고 도망치는 모습도 봤다.
아이들의 놀이가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중략~

평양보다 지방의 아이들이 더 격렬하게 노는 듯 했다.
골목길 빈터에서는 남자아이들이 말타기, 자치기, 알치기, 팽이치기 같은 놀이를 하며 놀았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늘 여럿이 함께 놀았다. - 332쪽

35.
남한은 특히 1990년대 말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 비교와 경쟁을 당연시하며 외부인이 진단하듯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가 되었다.
‘우리’를 잃은 피폐한 사회는 ‘돈’만을 절대가치로 숭상하며 열등감과 우월감이 교차하는 경제부국이 되었다.

남한이 국제사회와 경쟁해서 ‘자유’와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면, 북한은 자신의 무력으로 ‘자주’와 ‘자존’을 지켰다고 주장한다.
불가능한 조건에서 만들어 낸 특별한 성취는 그만큼 큰 희생과 모순을 안고 있다.
이제는 서로를 거울삼아 과도하게 편향된 성취가 만든 문제를 직시하고 치유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 361쪽 

36.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을 만날 때는 서로 살아온 삶의 경험에 대한 존중과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로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나의 관점에서 상대방의 삶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의 눈을 통해서 그가 본 세상과 걸어온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 362쪽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20/06/12 10:48 | 교육단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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