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독후기19 공감의 언어
「공감의 언어」를 읽고

“『공감의 언어』는 (KBS)아나운서 ‘정용실’이 오랜 방송 경험과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바탕으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깊은 대화와 진정한 소통, 그리고 관계에 대해 써내려간 자기계발 에세이다.”

현직 아나운서인 작가의 경험과 철학, 감성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것도 아주 명쾌하고 품격 또한 높다.
작가의 공감의 깊이가 무척 넓고 깊어 가슴에 더욱 크게 와 닿은 책이다.

저자의 공감에 공감하며 책 읽는 내내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 자주 책읽기를 멈추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에 밑줄 그으며 나의 언행을 되돌아보며 반성했다.
특히 ‘내가 말하기보다 상대의 말을 제대로 온전히 들어주자’는데 크게 공감했다.
대화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나의 말하기 습관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나도 상대와 대화할 대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집중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몰라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했던 거다.
대화할 때는 말하기보다 들어주자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새 내 말만하고 있는 나를 뒤늦게 깨닫고는 얼마나 한탄하고 부끄러워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고치지 못했다.

대화 중에 내가 할 말을 생각한다는 건 상대의 말을 진심으로 듣지 않는다는 의미다.
남이 이야기할 때 불쑥 끼어들어 말 할 때의 나는 오만과 편견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가 너보다 낫다’는 오만, ‘너는 잘 모르고 내가 더 많이 안다’는 오만, 얼마나 어리석고 못난 일인가.

오만하고 편견으로 남과의 공감을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었다.
제발, 말하기보다 듣자, 그의 편이 되어 듣자.

그리고 대화하며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지 말자.
그냥 진심을 다해 들어주자.
말하지 않고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말한 것 이상의 효력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서도 또 그런다면 나는 멍청한 거다.
세상 헛 살아온 거다.

독서가 주는 이로움 중의 하나가 독서하는 그 자체가 즐겁다는 것이다.
물질이 주는 즐거움, 행복보다 몇 갑절 더 행복할 수 있다. 
"공감의 언어" 바로 이 책이 그런 행복감을 듬뿍 안겨줄 것이다.

“상대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그에게 보석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끝)

<덧붙임>

= 기억하고 싶은 문장 =
책을 읽다가 밑줄 그은 내용 중 내가 글을 쓸 때 유용하게 인용할 만 하거나, 가슴에 새겨 두고 실천하고 싶은 내용을 옮겨 보았다.

<머리말>
1.
공감은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 5쪽.

<1부> 대화는 너와 내가 만들어가는 춤

1.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내가 한발 먼저 다가가고, 내가 먼저 말을 하고, 내가 먼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중략~
타인을 향한 첫걸음은 조심스럽게, 조금은 솔직하게, 은근 따스하게, 그러면서도 나답게 떼어야 한다. / 10~11쪽

2.
따스함, 이것은 대화의 시작일 뿐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중요하다.
따스함은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여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의 중심부를 녹여내는 용광로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 28쪽

3.
대화와 소통이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상황과 감정을 보아야 한다.
상대를 제대로 보려하지 않고 내 마음만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응석이요, 투정이다.
대화에는 ‘상대’가 너무 중요하고, 그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까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 37쪽

<2부>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어요

1.
오만과 편견. 상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기’위해서 반드시 점검해야 할 두 가지 태도다.

‘오만’이라는 마음의 상태는 자신을 타인의 위에 두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애정이 없기에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어렵다.
진정한 소통은 항상 같은 높이에 서 있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마주 보고 눈을 맞추어야 대화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자신이 높이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 그때부터 소통은 시작되고, 귀는 열린다.

‘편견’은 마음의 색안경 같은 거다. 혹자는 ‘프리즘’이라고 표현 한다.
상대와 소통해보기도 전에 이미 무엇인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이 어떤 말을 해도 자신의 색안경을 통해 보이고, 자신의 프리즘을 통해 굴절되어 왜곡되어 보일 것이다.
진심과 다르게 해석되기 십상이다.
상대가 자기를 더 설명해보려 노력하면 할수록 더 오해만 깊어질 뿐이다. / 63쪽  

2.
“어느 듣기나 모두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
미워서 못 듣고, 싫어서 못 듣고, 시간이 없어서 못 듣고, 편견을 가지고 있어 못 듣고, 게을러 못 듣고, 마땅치 않아 못 듣는다.” / 64쪽

3.
듣기란 섬세한 작업이다. 말 안에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화 내용만이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의 눈빛, 숨소리, 손짓, 목소리…
나아가 세세한 감정까지도 다 포함되어 있으니, 머리로 내용을 간파하고, 눈으로 그 사람의 눈빛을, 귀로 숨소리와 목소리를, 코로 그 사람의 체취를, 손으로 그 사람의 체온을 느껴야 한다.
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이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들어야 한다. / 72쪽

4.
우리는 상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말에 귀 기울여줄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마이클 니콜스’는 “경청은 인간의 가치를 강화시켜주고,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고 했나 보다. / 76쪽

5.
유아 심리학자인 ‘대니얼 스턴’은 ‘이해받기를 바라는 욕구’가 음식과 주거지 다음으로 중요한 욕구라고 순위를 매겼다.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을 빼고는 가장 높은 순위가 ‘이해받기를 바라는 욕구’인 셈이다. / 77쪽

6.
말할 기회를 엿보는 것에만 집중해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에고(ego)'.
그러다 보니 내 말 할 기회를 뺏어간 사람이 미워지고, 서로 자신의 이야기만을 외치는 연극 무대가 되어버린다.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도 오직 기억하는 것은 내 이야기뿐이다.
~중략~
말하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을 때 상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을 수 있다.
듣기는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 86쪽

7.
‘귀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알프레 토마터’에 따르면, 태아는 수정된 지 며칠 안에 기본적인 귀가 발달하고, 수정 후 4,5개월이 되면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이에 반해 눈은 출생한 지 몇 달이 지난 뒤에야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보는 것’ 보다 ‘듣는 것’이 먼저 시작되는 것이다. / 89쪽

8.
듣는다는 것은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자 삶을 지혜롭게 사는 길이다.
~중략~
끝으로 인디언 할머니가 손자에게 남긴 이 한마디를, 가슴에 새겨야 할 것 같다.
“ 사람이 인생의 여정을 가는 동안 위대한 신의 안내와 가르침을 발견하는 길은 듣기를 통해서, 듣는 것과 귀를 열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통해서뿐이란다.” / 93쪽

<3부> 마음의 벽을 허무는 공감의 언어들

1.
우리가 가진 취약한 부분이, 우리 생각과는 달리, 감추어야 할 부분이 아니라 솔직하게 드러내야 할 부분이 아닐까?
혹여 이런 약한 부분을 보고 실망해 상대가 떠나버릴까 걱정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이런 취약한 구석이 있는 인간이기에 이런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되고 상대를 위로하고 돕고 싶어진다. / 102쪽

2.
평소 딸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자신의 기준, 사람들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 잘 되길 바란다는 말이었지.
내 맘에는 안 들어도 딸이 정말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며 한 말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딸이 원하는 것은 그녀 존재 자체로서, 살아있는 생명 자체로서 사랑해주는 거였는데 말이야.  / 108~109쪽

3.
진정한 공감은 타인의 감정에, 고통에, 아픔에 같이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 맥락과 상황 속에서 의미를 찾아낸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위로에 그치지 않는다.
내 문제를  대하는 것과 같이 책임감이 느껴진다. / 157쪽

4.
진정한 공감은 상대에겐 ‘치유’이고 나에겐 ‘성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59쪽

<4부> 우리가 몰랐던 대화의 비밀

1.
인생의 힘든 문제를 피하고 도망간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대화도 상대의 감정을 살피느라 내 감정을 무시하거나 좋은 말만 한다고 해서 잘 풀리는 게 아니다.
마주 해야 한다.
삶은 우리에게 스스로 문제에 직면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 풀어가라고. / 163쪽

2.
감정은 이성보다 빠르게 나타난다.
곧바로 반응한다. 그래서 감정에 휩쓸리기 쉽다.
감정이 스치고 간 다음에 차분히 생각해본다. / 169쪽

3.
나를 속이면 자존감은 낮아진다.
내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해도 자존감이 낮아질 뿐 아니라, 생각과 다른 말을 해도 자존감이 낮아진다는 말이다.
말과 행동도 일치해야 하지만, 생각과 말도 일치해야 한다.
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있을 때, 그런 자신이 미워진다.
‘왜 내 마음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 하는가…’, 마음속에선 이런 외침이 들린다.
내 자신이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게 되는 대목이다. / 175쪽

4.
 ‘상대를 조종하려는 욕심’, ‘지배욕’은 사랑하는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소통과 대화에서도 걸림돌이다.
직장에서 상사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교사라는 이유로, 집에서 부모라는 이유로, 대화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기도 하고, 상대의 말을 끊기도 하고, 발언권을 자기 맘대로 휘두르기도 하면서 말이다.
상대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서. / 181쪽

5.
우리는 소통에서 보디랭귀지를 무시한다.
언어처럼 정확하게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 일화에서 보듯 보디랭귀지는 언어보다 중요하다.
~중략~

(뇌의) 변연계는 생존을 책임지는 곳이다.
우리의 생존이나 감정을 위협하는 문제에 직면하면 곧바로 행동을 지시하는데, 손발, 몸, 얼굴 등에 빠르게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지기 때문에 놓치기가 쉽다.
이 같은 생존 반응은 숨기거나 참기 어렵다.
큰소리가 났을 때 깜짝 놀라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사고, 감정, 의도’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변연계를 ‘정직한 뇌’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인간의 뇌, 신피질은 고차원의 인지와 기억을 담당하는 ‘사고하는 뇌’라고 할 수 있다.
신피질은 계산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다소 어려운 일을 한다. 말하기 영역도 관장한다.
가령, 친구가 자신의 헤어스타일이 어떠냐고 묻자 맘에 안 들어도 친구 기분이 상할까봐 거짓으로 좋다고 말하는 식이다.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과 전혀 다른 대답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신피질을 ‘가장 정직하지 않은 뇌’, ‘거짓말 하는 뇌’라고 부른다. / 190~191쪽
 
<5부> 오늘이 삶에서 마지막인 것처럼 대화하라

1.
공감(共感)은 공명(共鳴)하는 것이다. 함께 울리는 것이다.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다.
‘하루키’의 글처럼 상처는 상처로, 아픔은 아픔으로, 나약함은 나약함으로 말이다. / 211쪽

2.
연민(憐憫)은 서있는 높이가 다르다.
한 사람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상대방이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민은 선 긋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와 네가 다르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인 셈이다.
그러니 말을 하면 할수록 서로 거리감이 생긴다.
서로 손잡을 수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다. /211~212쪽

3.
1979년부터 2009년 사이에 미국 대학생들을 상대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낮아졌다고 한다.
2000년 이후는 특히 급격히 감소한다.
이와 더불어 미국 대학생들의 자아도취는 심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두 연구는 연관성이 크다.
자기도취가 심한 사람은 공감 능력이 낮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너무 빠져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력이 없다. 215~216쪽

4.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소통은 얕은 소통이고, 관계는 얇고 넓은 관계이다.
이런 관계는 예쁜 옷 차려입고, 화장 곱게 하고, 내 기분이 좋을 때만 만나는 관계다.
이 정도의 관계는 순식간에 넓어질 수 있다.
이런 관계는 내 좋을 때는 편하고 좋다.
하지만 정작 사람이 필요한 순간인 아프고 힘들 때는 부를 사람이 없다는 게 나를 더 힘들게 만든다.

우리가 바라는,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는 바로 ‘사랑하는 관계’다.  
사랑하는 관계란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깊은 관계에 해당한다.
서로에 대해 거의 다 알고 싶어 하고 그래서 자신에 대한 모든 걸 건다.
~중략~
이 같이 서로 단단하고 깊은 관계를 맺을 때,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갖는다.
비로소 만족감, 행복감에 도달하게 된다.

이에 반해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얕은 관계, 부서지기 쉬운 관계를 붙잡고는 늘 불안하다.
곧 부서지는 벼랑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말이다.
‘소셜 네트워크’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는 이유다. / 222~223쪽

5.
표지 사진 한 장만 보고 사버린 책이 있다. <D에게 보낸 편지>
~중략~
우리가 말로만 알고 있는 소울 메이트(soul mate), 영혼까지도 서로 공명하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당신은 곧 여든 둘이 됩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해 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의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 225~226쪽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20/06/29 17:32 | 교육단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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