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독후기20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를 읽고
<들며>

이 책은 지은이가 <제주 4·3 현장>, <광주 5·18 현장>, <세월호 참사 현장> 등 9개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고 쓴 답사기다.
이 책의 저자 박래군은 ‘1988년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분신하여 세상을 떠난 동생 박래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권운동을 하게 되었다. 

출판사 리뷰에
“이 책은 30여 년간 활동해온 인권운동가가 한국현대사의 역사적 현장들을 직접 찾아 인권의 시각으로 정리해낸 답사기이다.
제주 4·3, 광주 5·18, 세월호 참사 등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한민국 인권의 실태를 기록했다.

인권의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국가가 개인들에게 저지른 폭력과 범죄의 흔적이다.
가해자가 무소불위의 국가 권력이기에 폭력과 범죄는 대규모였고, 더 집요하고 잔인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들딸, 부모형제의 죽음을 끌어안고 울음을 삼켜야 했던 사람들이 힘겹게 목소리를 내고 몸부림을 쳐왔기 때문에 인권의 현실은 조금씩 개선되어왔다.
이 책에는 그런 과정과 결과를 인권의 렌즈로 보고 담았다.” 고 했다.

목차 순서대로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1. 제주 4.3 현장

<제주 4.3사건 개요>

-1947년 3월 1일 3.1만세운동을 기념하는 북촌초등학교 군중집회에서 말을 탄 기마경찰에 어린이가 치이는 사고 발생함
-사고를 방치하고 가는 경찰에 항의하자 경찰이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6명의 중상자 발생함
-경찰과 사법기관을 제외한 공무원 등 민·관 총파업 실시함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500여명을 검거해 고문을 자행함
-제주도민들의 분노가 시한폭탄이 됨
-1948년 들어 남한 단독 선거로 단독정부를 세우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 시작(1948년 4월 3일)
-5월 10일 치러진 남한 단독 선거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2곳의 선거구에서 선거를 치루지 못함
-미군정은 제주도를 “레드 아일랜드”로 낙인찍음
-육지에서 군경을 증파하고 극우 테러집단 서북청년단을 동원하여 도민 학살에 나섬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6개월여 동안 제주도는 도민 약 3만 명이 학살당한 제노사이드 현장이 됨
<덧붙임>
-1948년 10월 무장대 토벌 명목으로 여수·순천지역 주둔 국방경비대 14연대를 제주도로 동원하려 했으나 좌익계열 장교들의 주도로 이를 거부하여 반란을 일으킴 - 여순반란사건 발생

제주 4.3현장과 유적지는 2015년 5월에 5박 6일간의 제주도 출사 때 가보았다.
한라산 털진달래 촬영이 목적이었지만 닷새 동안 일출 촬영 후 낮에는 유적지나 유명여행지를 둘러보거나 올레길을 걸었다.

그때 4.3유적지인 다랑쉬굴, 북촌 너븐숭이 유적지와 기념관을 둘러보았고 4.3평화공원도 가보았다.
4.3사건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이 책의 내용도 크게 다를 바 없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제주 4.3 평화공원의 전시관에 재현한 다랑쉬굴>
2. 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은 필요하다.
전쟁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참상을 알아야한다.

“전쟁기념관은 한국전쟁 정전 50주년을 맞아 전후세대들의 안보의식을 고취를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승자의 입장에서 기념하는 그곳에는 “평화는 없었다.”고 했다.

유엔군을 찬양하고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한 부분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이승만을 국부로 숭상하고 전쟁을 통한 통일을 주장한다는 점에 적이 놀랐다.
또다시 전쟁이라니, 그것도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풀이 하자니 어이가 없다.

그런 전쟁기념관이라면 내가 갈 일은 없겠다.  

<참고로>
2020년 7월 5일자 ‘뉴시스’ 기사 한 부분을 인용한다.

“6·25전쟁 등 우리나라 전쟁사를 소개하는 박물관인 전쟁기념관이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알려 다시는 이 땅에서 그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쟁기념관은 6·25전쟁의 실체를 다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할 만한 내용은 (왜곡, 미화되거나) 전시에서 빠져있다.”

※ 위의 밑줄 친 전시에서 미화하거나 빠진 부끄러워할 만한 내용이란
1. 「이승만의 지시로 일어난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의 미화」
2. 「UN군과 국군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 내용 없음」
3. 「일본군 위안부를 본 뜬 ‘특수위안대’라 불린 한국군 위안소 운영 내용 없음」 등을 말한다.

3. 소록도

일제시대에 조성된 나환자(문둥병)들의 정착촌.
스러져가는 몸만큼이나 가혹한 인권유린이 있었던 곳.

내 어릴 때 동네에 떠돌이 문둥병 환자들이 나타나면 동네 사람들이 돌멩이를 던지며 쫓아냈다.
어릴 때라 가담은 하지 않았지만 문둥병 환자에 대한 무서운 소문들이 흉흉하던 시절이라 쫓아내는 게 당연하다고 느꼈다.
성인이 된 뒤 ‘한하운’ 시인을 알고는 문둥병에 대한 혐오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어떤 경우든 진실을 제대로 알면 혐오와 차별은 없다.  

다시는 이 땅에서 왜곡되고 부당한 천형의 낙인을 찍혀 멸시로 고통의 삶을 사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4.5. 광주 5.18 현장(1),(2)

학살자 전두환 일당의 군사구테타 음모의 하나로 계획된 5.18.
고립된 도시에서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는 가족, 동료, 이웃을 보고 분연히 일어선 무장 항쟁.
군부에 휘둘린 정부의 발표와 언론의 거짓 보도로 진실을 몰랐던 도시 밖 사람들은 그들을 폭도라 불렀고 잔혹한 진압작전을 정당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다 비극적인 참상이 끝난 뒤에 광주의 진상은 알려졌고 국민들은 분노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는 518항쟁을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세력에 맞서서,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럼에도 학살자 전두환은 아직까지 멀쩡하게 살아 광주를 욕보이고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극우주의자들은 광주민주화 운동을 폄하, 왜곡하며 심지어 북한 특수부대 남파 운운하며 미친 소리를 내고 있다.
또 그걸 믿고 비난 대열에 동참하는 우매한 국민들도 적지 않다.

더 이상 이 땅에 군부 쿠데타로 인한 독재정권이 수립되는 일은 없도록 민주시민의 단결된 힘으로 막아야 한다.

6. 남산 안기부 터와 남연동 대공분실

<안기부 터>
독재정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반정부 인사들을 납치하여 잔혹하게 고문한 현장이다.
이곳에서 (박정희, 전두환)독재정권유지를 위해 고문으로 조작한 대표적인 사건의 예를 들면

1.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
독일 거주 지식인과 유학생이 연루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
관련 인사들을 독일에서 불법으로 납치하여 이곳에서 고문하여 조작한 사건이다.
유럽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노, 천상병 시인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하였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한 음모

2.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고문으로 인한 조작사건으로 이에 연루된 민주인사 8명이 사형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사건

‘인혁당 재건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단체였다. 중앙정보부가 관련자들을 혹독하게 고문해 조작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유신 체제의 폭력을 상징하는 '사법 살인'으로 꼽힌다.

3.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980년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세력이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 20여 명을 북한의 사주를 받아 내란음모를 계획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일으켰다는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2004년 김대중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남영동 대공분실>
안기부 터와 마찬가지로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위기 때마다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함으로써 정권 지키기에 급급했다.

1. 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고) 김근태 의원 고문 현장
“1985년 8월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배후조종 혐의로 연행되었다가 남영동에 있는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
그의 고문사실이 <뉴욕 타임스> 등에 보도되어 전두환 정권을 궁지에 몰았다.”

2.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현장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재학 중이던 1987년 경찰에게 불법 체포되어 수사를 받다가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했다.
경찰의 은폐 시도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폭로되면서 6월 민주 항쟁의 계기가 되었다.”

고문은 민주국가가 아니라도 사람에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될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고문으로 조작한 사건으로 민주인사를 처형하고 인권을 말살한 비극의 현장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 그런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참고로
당시의 고문지시자 ‘정형근’은 3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고문기술자로 악명 높은 ‘이근안’은 목사가 되었다.
“제기랄!”

7.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조선말 독립협회가 지은 독립관을 헐고 1908년 최초의 근대식 감옥을 지었다.
일제는 체포한 의병들을 이 경성감옥에 수감했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한 잔혹한 현장이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이 민주투사들을 가두고 고문한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많은 죄수가 앉아 있을 때는 마치 콩나물 대가리 모으듯 되었다가 잘 때는 한 사람은 머리를 동쪽 한 사람은 서쪽으로 해서 모로 눕는다.
그러고도 더 누울 자리가 없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일어서고 하는 통에 두 발도 먼저 누운 자의 가슴을 힘껏 민다.
그러면 누운 작자들은 “아이구 가슴뼈 부러진다”하고 야단이다.” 김구 / ‘백범일지’ 중에서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아오르고 방 안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아 채 날밤을 세웠습니다.”  심훈(‘상록수’ 저자) /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 중에서

일제와 독재정권에 의한 잔악한 고문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인권 말살 현장.
숭고한 애국지사와 민주지사, 그분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8. 마석 모란공원

1966년부터 조성된 공원묘지에 150기 정도가 들어선 ‘민주열사묘역’이 있다.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인권운동, 통일운동 등 각 분야에서 사회운동을 했던 분들이 잠든 곳이다.
“이곳에 잠든 열사들은 그 죽음의 양상도 다양하다. 분신이나 자결, 공권력에 의한 죽임, 아직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의문사 등이다.
사상도, 이념도, 정파도 다르고, 살아온 삶도 각기 달랐지만 사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온 몸을 바쳐서 한 시대를 살아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전태일, 문익환, 김근태, 노회찬, 박종철 등이 있다.

이 묘역에는 저자가 주제별로 이름 붙였는데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이 잠든 <노동의 길>,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분들이 잠든 <민주의 길>, 독재 권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이 잠든 <인권의 길>이 있다.
“노동과 민주와 인권의 길은 각기 다른 길이 아니고 한국현대사에서 서로 만나 합쳐지는 길이다.”

고귀한 그분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도록 민주시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자.

9. 세월호 현장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탄핵녀는 7시간 동안 무얼 했는가!

극우반동분자들은 왜 세월호 사건이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문제 삼는지 모르고 있다.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불문가지(不問可知)요, 명약관하(明若觀火)한 문제인데도 말이다.
한마디로 책임지기 싫다는 뜻이겠지.

나아가 당시의 정부 인사와 여당인 새누리당 인사들은 “세월호 사고는 교통사고”라며 본질을 호도하기까지 하며 망발을 지껄인다.
그 발언 당사자가 현재 야당대표인 ‘주호영’이다.
질기게 우려먹는다고 흰소리 지껄이며 불만을 늘어놓는다.

법을 철저히 지켰다면 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고, 매뉴얼대로 일사분란하게 대처했다면 인명구조도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사고는 났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정부와 그 공복들이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해 발생한 사건인데도 개인의 비리나 잘못으로 덮어 씌워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다.

현재진행형인 재판과정에서도 그들은 구차한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다.
세월호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아직은 끝내서도 안 된다.
<나며>

이 땅의 보수세력, 아니 극우, 수구세력들은 과거사 문제는 그만 덮자고 한다.
과거사 문제는 그냥 덮는다고, 시간만 지난다고, 그만 잊자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진상 조사, 원인 규명, 관련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피해자 보상과 국가적 차원의 위로 등이 뒤따라야 진정한 해결이 된다.

특히 책임자 처벌은 과거사청산의 핵심이다.
그래야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언젠가 다시 부활을 할 것이 틀림없다.
또다시 잔혹한 만행과 비극적 참사는 되풀이 될 것이 자명하다.

동생 박래전의 주검 앞에 한 약속으로 평생 인권운동가의 고달픈 지난한 삶을 살아온 인권운동가 저자 박래군, 나는 그의 삶을 존경한다.

그와, 뜻을 같이한 여러 동지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인권은 더디지만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었고 오늘날 이만큼 다가왔다.
덕분에 우리는 그 열매를 누리고 있다.
그들의 노력과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끝으로
이 책에 소개된 역사적 현장 중 뒤늦게나마 부끄러운 마음 품고 광주 5.18과 세월호 관련 현장에는 꼭 가 볼 것이다. (끝)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20/07/07 20:11 | 교육단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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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해영 at 2020/07/08 14:35
저도 518 묘지와 세월호 현장을 못가봤습니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아이들 하늘나라 갔을 때 안산 추모공원에 들려 분향하면서
숫자로만 만났던 주검의 숫자가 엄청 많은것에 슬픔이 몰려와 주저 앉았던 ....
그리고 밖으로 나와 통곡을 했습니다.
제 집과 가까운 곳에 419국립묘지가 있습니다.
매년 419가 돌아오면 어린나이에 돌아가신 연고자도 없으신 분께
소주잔을 올립니다.

잊지 말아야지요.
잘못된 역사를 정죄 안했을 때 다음 세대에 반복 된다는 엄연한 진리를 왜 외면 할까요..

대한민국 참 불행한 나라입니다.
Commented by 백산 at 2020/07/08 20:19
저는 용기보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미루다 그리되었습니다.
많이 부끄러워 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은폐하려고 하니까 비극이 일어나는 거지요.
고문, 학살 등 일제의 더러운 잔재를 해방 공간에서 이승만 이하 독재정권들이 답습했기에 이 지경이 되었죠.
지금이라도 청산하지 못한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 합니다.

내 손주들은 지금보다 한 차원 나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해영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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