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나의 독후기31 미움 받을 용기
「미움 받을 용기」를 읽고
얼마 전에 읽은 기사미 이치로의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서 소개된 <알프레드 아들러>와 자신이 쓴 <미움 받을 용기>를 알게 되어 읽어보고자 두 권을 동시에 구입했다.   

<알프레드 아들러>를 먼저 읽었는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심리학의 핵심인 개인심리학에 대해 주제별 나열식 집필의 영향인지 몰라도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반적인 학술 서적과는 구성이나 전개방식이 달라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적잖이 당황해했다. 
그래서인지 심리학에 관한 학술서라기보다는 자기계발서란 느낌이 더 크게 들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되풀이하여 읽어봐도 개략적, 파편적으로 이해가 되었지만 전체를 논리정연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도 답답하여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으나 일단 제쳐두고 <미움 받을 용기>를 읽어보고 판단하고자 했다.

“미움 받을 용기’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철학자 기사미 이치로, 작가 고가 후미타케가 쓴 아들러 심리학 입문서이다. 
입문서라 해서 아들러 학파의 전체 학설을 담은 것은 아니고, 양 저자는 인간관계의 갈등과 해결방안을 중심으로 아들러의 사상 일부를 발췌해 책에 담았다. 
소크라테스 대화법 형식으로 쓴 책이다.”

청년과 철학자가 다섯 밤을 대화법의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주로 청년이 질문하고 찰학자가 대답하는 형식이다.
첫 번째 밤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두 번째 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세 번째 밤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네 번째 밤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다섯 번째 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의 순서로 진행되는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는 아들러의 중심 학설의 이해를 돕는다. 

아들러의 심리학에 바탕을 두고 청년과 철학자가 주고받는 대화는 읽어가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반드시 아들러 심리학을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는 전제가 없기에 누구나 읽으면 일정수준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처음부터 이해가 부족했기에 대화를 이어갈수록 오리무중으로 든다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2015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서적 1위를 차지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는 575건의 회원 리뷰가 있을 만큼 절찬리에 판매되었다. 
내가 읽어 본 책 중 가장 많은 독자 리뷰가 실린 책이라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거기다 그중 99%가 긍정적인, 그것도 매우 긍정적인 리뷰였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인문+자기계발+소설이 결합된, 이전에 없던 ‘새로운 고전’의 탄생!”
“대화체라 쉽고 재미있다. 술술 읽힌다!”
“100권의 자기계발서보다 이 책 한 권이 낫다!”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근본부터 흔드는 책이다!”
“이 책을 만난 건 내 인생 최대의 기적이다!”

긍정은커녕 제대로 이해도 못한 나는 뭐지? 
읽다가 고심하고 나 자신과 빗대어 보고 해도 내 뇌리에 박히지도 가슴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주변만 맴도는 느낌이었다. 
아들러의 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가? 
뛰어난 저작을 이해하기엔 내가 아둔한 탓인가? 

여러 저명인사, 숱한 독자들의 찬사를 공감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나 자신을 보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더 자책하지는 않았다. 
내가 공감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 해도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느 독자의 부정적인 서평에 눈길이 갔다.
“철학자가 들려주는 여러 가지 현명한 충고들을 받아들여 변화하고 실천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정신적인 편안함과 안정 속에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열등감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매우 요원하게 느껴지고 공염불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의 리뷰를 올린 수많은 독자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궁금하다. (끝)

P.S / <알프레드 아들러>, <미움 받을 용기> 두 권의 책은 한 동안 미뤄뒀다 다시 읽어볼 생각이 있다. 
<덧붙임> 

= 남의 “싸구려 인정”보다 자존감을 =

책을 다 읽고 나니 300쪽이 넘는 본문의 글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쓴 짧은 서문 중 한 대목에 가장 크게 눈길이 꽂힌다.

“남들 이목 때문에 내 삶을 희생하는 바보 같은 것이 어디 있느냐는 저자의 주장은 일상의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페이스북의 ‘좋아요’나 트위트의 ‘RK(리트윗)’를 죽어라 누르며 ‘싸구려 인정’에 목매어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귀담아 들을 만하다.”

왜, 그 많고 많은 ‘좋은 말씀’ 다 제치고 위 문장이 가장 또렷이 기억에 남는 이유가 뭘까? 
특히 ‘싸구려 인정’에 방점을 찍고 깊은 고심에 빠져든다. 

왜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 버튼 한 번 누르는 수고를 할 뿐인 ‘싸구려 인정’에 목말라 하며 매달릴까? 
페이스북, 인스타 등 SNS에 “좋아요” 버튼 받기에 목을 매는 건 현대인들이 타인에게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욕구에 목말라 하는 건 아닌지. 

내가 드나드는 사진사이트의 예를 보면, 올라온 사진의 작품성과는 무관하게 “좋아요”의 개수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다분히 품앗이 성격이 짙은 그런 “좋아요”의 개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이렇게 남의 인정에 휘둘리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치면 자신을 괴롭히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싸구려 “좋아요” 인정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으면 좋겠다.  

“너의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너 뿐이다”는 ‘아들러’의 경고를 되새겨 보고, 
남의 인정보다 자신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자존감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끝)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21/09/05 15:47 | 교육단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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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풀잎아 at 2021/09/06 05:18
저는 신기한 게, 사실 불행하게도 일본인 작가 쓴 책을 읽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의 저 유명한 책 '로마인 이야기'도 안 읽었습니다. 읽은 책 중에서 유독 책 읽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 그러니까 이번에 읽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또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등 처럼 독서 관련 책은 쉽게 읽힙니다. 아, 불교 책도 읽습니다.

그 외 자기개발서, 심리학, 소설은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기를 일본인 작가의 개념과 나의 개념은 충돌하는가. 의심합니다.

그게 아니면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반일감정일지도 모른다. 라고 치부합니다.

일본, 가깝고도 먼 나라..
유난히 안 읽히는 책을 보다가 뒤집힌 일은 일본을 거쳐와 재번역된 책입니다. 왜 읽기가 힘들었는지 아는 순간 부글부글..
번역 실력이 없는 제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 억울합니다. ㅡ.ㅡ


Commented by 백산 at 2021/09/06 16:45
일본 작가가 쓴 책을 읽지 못한다니 특이하긴 합니다. ^___^**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오래 전 읽었습니다.
당시 작가의 집중독서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실천 못하고 있습니다. -_-::

외국 서적은 번역이 아주 중요함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요즘은 우리나라 전문번역가들의 수준이 높아 대체로 오역의 문제는 못느끼는데 가끔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책이 있긴 있더군요.

저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자기계발서>류의 책은 가급적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읽을 때는 공감하지만 읽고나면 공염불이 되더군요.
대신 <세계문학>은 꾸준하게 읽을 예정입니다.

저는 일본 작가들 책을 더러 읽습니다. 도전해 보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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