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나의 독후기38 열하일기2편-1권 독후기
<열하일기 1권>을 읽고 
1권은 압록강을 건너며 북경을 거쳐 청나라 건륭황제의 여름 휴가지인 열하까지 가는 여정의 여행일기가 주된 내용이다. 

- 1권 차례 - 
머리말 /「열하일기서」/ 熱河日記序
압록강을 건너며 / 도강록(渡江錄)
심양의 이모저모 / 성경잡지(盛京雜識)
말을 타고 가듯 빠르게 쓴 수필 / 일신수필(馹迅隨筆)
산해관에서 북경까지의 이야기 / 관내정사(關內程史)
북경에서 북으로 열하를 향해 /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열하일기는 사절단 일행이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여정의 시작은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다. 
한양에서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한 달여가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암은 이 과정은 일체 생략해버렸다.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부터 북경을 거쳐 열하까지 가는 여정은 낯설고 물설은 땅으로 가는 멀고 오랜 날들이 걸렸다. 
거기다 대규모 인원에 한여름 무더위와 식사 문제 등 여러 면에서 열악한 조건에서 길을 떠났고, 여러 번 물을 건너며 때론 목숨을 건 사투를 해야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천신만고, 파란만장한 여정이었다. 
읽는 내가 더 안타까웠고 가슴 조렸을 정도였다. 

그런 여러 악 조건에서도 날마다 이토록 세세하게 기록하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의 날씨부터 하루 동안 지나간 마을과 거리는 물론 하루 일정을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압록강을 건너는 6월 24일부터 북경에 도착하는 8월 9일까지 67일간의 일기를 담고 있다. 
하루의 기록 분량이 많은 날은 20쪽이나 되었다. 

지나가는 길에서 본 풍경과 마을의 규모, 그곳 사람들의 복장이나 생활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대면했던 인물 묘사와 통역이나 필담을 통한 대화 내용도 자세히 기록했다. 
또 청나라의 제도와 법, 유적이나 건축물의 구조와 건축 방식, 유물이나 생활도구 등 여러 사물의 모양과 용도, 직접 본 동식물까지 하나도 허투루 대충 쓴 내용이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붓, 먹물, 한지 등 필기용품이 휴대나 기록을 해야 하는 면에서 매우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여행 기록을 위한 용품으로 휴대폰이나 수첩, 볼펜 등의 편리성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의 박학다식한 풍부한 지식과 예리한 관찰력, 사교적 성격, 번득이는 재치로 그려낸 글은 실제 눈앞에 마주하고 보는 듯하다. 
또 감정 표현까지 풍부하고 솔직하다. 
조금 부풀리면 내가 연암을 따라 갔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중국말을 몰랐던 연암은 중국인들과의 대화는 필담으로 했으니 더 놀랍다. 
거기다 연암의 빼어난 필력과 특유의 재치까지 더하니 재미있기까지 하여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덤으로 중국의 역사까지 알게 되어 좋았다. 
이 모두가 연암의 철저한 기록 정신이 빛을 발휘한 결과다. 

연암이 그토록 어려운 여건에서도 청나라 사람들을 만나 필담을 나누고자 했던 것은 그들의 입을 통해 청나라의 실상을 바로 알고자 했던 것이다. 
잘난 선비들이 빼어난 풍경과 화려한 건축물 등에 눈길을 빼앗겨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탄사를 연발할 때 연암은 그들의 속 모습을 파헤쳤던 것이다. 
역시 실학자다운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연암 일행이 갔던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 시대는 태조 누르하치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통일하여 대제국을 이룩한 뒤 태종(홍타시)-순치제-강희제-옹치제를 거치면서 
나라는 안정되었고 문화적으로도 매우 발전했으며,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우리 사절단 일행은 중원의 한족이 아닌 만주족, 즉 오랑캐들이 세운 나라라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폄하했다. 
청나라에 비하면 ‘우물 안 개구리’였던 조선은 서양의 발달한 문물을 몰랐거나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자행했다. 

그런 청나라 무시 풍조 속에서 연암은 “천하를 원하는 자는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비록 오랑캐의 것일지라도 마땅히 수용하고 본받아야한다”고까지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청나라에서 널리 활용하던 수레를 조선에서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했다.

연암이 청나라를 여행하던 때는 조선이 섬기던 명나라가 망한지 1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명나라를 섬기고 청나라는 오랑캐 만주족이 세운 나라라며 천대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그들을 ‘되놈’이라 예사로 대놓고 비하했다. 
그만큼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가 뇌리에 깊이 박혀 있던 그런 시대였다.
하지만 연암은 청나라를 방문하며 오로지 청의 발달한 문물을 보고 놀라워하며 조선이 받아들이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그들의 나라 발전과 백성들의 생활 향상을 위한 획기적인 주장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조선 조정이나 사대부들의 편협함에 절망했다. 
아무 근거도 없이 부질없는 선민의식에 절어 청나라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던 우리의 양반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연암은 열하일기를 통해 청나라의 선진 과학 문명을 보고도 단지 오랑캐라는 이유로 배척하며 보고도 못 본채 하고 있던 조선 사대부들을 향한 독설이 잘난 일등 선비들의 뼈를 후려친다.

연암의 개인적인 능력과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쓴 군계일학의 여행기 중의 여행기 열하일기는 사절단의 배려와 노복, 마부, 동료 등 다른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 숨은 공로자들의 노고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연암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집필한 시대의 역작 ‘열하일기’는 당시의 베스트셀러였다고 할 수 있으나 오늘날처럼 인세 한 푼 들어오지 않을 시대였으니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너무 가난하여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하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끝)

<1권 차례에 따른 여정도>

"감사합니다"  백산 절~ OTL
by 백산 | 2021/11/07 19:56 | 교육단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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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김해영 at 2021/11/08 09:04
저는 보리출판사 리상호 번역과 올재에서 나온 이가원 번역본으로 읽었습니다.
올재판 2권을 읽다 글자가 너무 작고 빡박해 여라판본을 조사하다 한글이 아름답게 번역 됐다는 리상호선생 역을 읽었는데
쉽고 감동되게 읽었습니다.
김혈조선생판도 읽게 되겠지만 고미숙교수의 해설집에 많이 인용되어 읽은듯하게 익숙한 문체입니다.

요즘 김성동작가의 [국수] 읽고 있는데 한국말이 이리 어렵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2권 읽는 동안 한줄 읽기가 어려웠는데 3권서 부터 뜻을 해석하기 보다 문장으로 이해하며 넘기고 있습니다.
우리말 중 모르는 말이 너무 많다는걸 알게 됩니다.
읽을 책은 많고 책장은 잘 안넘어가고~~
연말 복잡한 일들이 끝나야 집중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백산 at 2021/11/08 20:50
해영님, 잘 지내시죠?

열하일기도 외국서적은 아니지만 원본 한문을 번역한 역서라 누가 번역했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역자는 잘 모르지만 돌베개 출판사를 믿고 구입하였는데 만족했습니다.

저도 지금 읽고 있는 <돈키호테>에 처음 보는 한글 낱말이 많은데 검색하며 읽느라 가독성이 떨어질 정돕니다.
아들, 손자, 지인 등 다른 사람이 읽기를 기대하며 편하게 참고하라고 따로 메모하여 붙여 놓습니다.
Commented by 김해영 at 2021/11/08 09:09
열하일기를 읽고 느낀점~~~
글 아무렀게나 쓰는게 아니다.
박지원님의 여행기를 읽으며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읽은 책 중 제일 위에 올려 놓은 글입니다.
쉽고 재밌고 깊이도 있는~~ 배우고 싶은 글입니다.
Commented by 백산 at 2021/11/08 20:51
저도 글이 짧아 독후기 쓰기가 만만치 않지만 열하일기는 내용이 방대하여 4편을 쓰려고 마음 먹고 쓰는 중입니다.
쓰는 만큼 나아지라 믿고 꾸역꾸역 쓰고 있습니다.

도움되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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